김흠운(金歆運) 은 신라 내물왕(奈勿王)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迊湌)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젊어서 화랑 문노(文努)의 문하에 노니는데 때마침 여러 사람들에게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이 지금까지 남았다'고 하는 말을 듣자 흠운은 개연히 눈물을 흘리며 생각을 가다듬고 발분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흠돌은 아첨하여 문명태후를 섬겼다. 이에 그의 딸이 유신공의 외손이므로 태자에게 바쳤다. 태자와 모후(母后)는 흠돌의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무열제의 명으로 흠운(欽運)의 큰 딸을 아내로 맞기로 약속하였으나 일찍 죽었다. 흠운의 작은 딸은 스스로 소명제주(昭明祭主)가 되기를 원하였다. 자의후(慈儀后)가 허락하였다. 이것이 소명궁(昭明宮)이다.

신문왕은 683년(신문왕 3)에 김흠운(金欽運)의 딸인 신목왕후를 받아들였는데, 먼저 왕의 작은아버지인 이찬(伊飡) 문영(文穎)과 개원(愷元)을 흠운의 집으로 파견하여 부인으로 책위(冊爲)하였다.

태자와 더불어 모후(母后)가 자주 소명궁으로 거둥하였다. 태자가 소명궁을 좋아하여 마침내 이공전군(理恭殿君)을 낳았다. 후(后)가 이에 소명궁(昭明宮)에게 명하여 동궁(東宮)으로 들어가게 하고 선명궁(善明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총애함이 흠돌의 딸보다 컸다. 흠돌의 딸이 투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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