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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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돌[欽突,627∼681(656~662 재임)]은 27세 풍월주다. 그는 달복[達福]과 정희낭주 김씨[政姬娘主 金氏]의 아들이다.

흠돌은 정해년(627) 생이고 병진년(656)에 화랑이 되었다. 진골정통으로 부제는 흥원[興元 -?~681]인데 호원전군[好元殿君]의 아들이다. 풍월주자리는 오기(김대문의 아버지)에게 물려주었다. 신광의 형 진광(晉光)은 곧 흠돌의 처였다. 그러므로 흠돌은 유신공의 공(功)을 핑계대서 말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 무리를 굳게 하려했다.

원선공 또한 4년을 지내고 군관공의 큰 아들 천관에게 사양했는데, 천관공의 아내는 바로 흠돌의 딸이다. 이에 화랑의 행정이 다시 흠돌 무리에게 돌아갔다. 천관은 8년간 풍월주의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흠돌의 아들 흠언(欽言)이 대신하였다. 흠언이 흠돌의 첩 언원(言元)의 소생이기 때문이었다. 흠언(欽言)은 5년간 (풍월주로) 있었다. 그리고 진공(眞功)의 아들 신공이 대를 이었는데 곧 흠돌의 조카로 또한 흥원의 딸을 화주(花主)로 삼았다.

신라 신문왕은 문무왕의 장자이며 664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왕비는 김씨인데 소판(蘇判) 흠돌(欽突)의 딸이다. 왕이 태자로 있을 때 비로 맞아들였으나 오래되어도 아들이 없었다. 문명태후가 죽자, 흠돌 등이 스스로 그 죄가 무거운 것을 알고두렵고 불안했다. 게다가 흠돌의 딸이 총애를 잃었다. 흠돌 등이 이에 모반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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