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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花郞世記)는 김대문에 의해 저술된 신라시대 화랑도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이다. 신라 성덕왕의 제위기간 (702년 - 737년) 사이에 쓰여졌다.

《화랑세기》는 김부식삼국사기를 서술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그러다가 1989년 남당 박창화가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인 정창원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 필사본과 모본이 김해에서 발견되었다.

이렇게 재발견되었다고 주장되는 《화랑세기》는 유교적인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은 신라인의 신라에 대한 기록이라는 데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지만, 현재까지 박창화가 필사한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은 화랑도의 구체적인 구조 및 진골정통, 대원신통(진골 참조), 마복자 등 신라사회에 대한 새로운 기록을 많이 전하고 있다.

진서론

향가 문제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향가가 한 수 기록되어 있는데, 진서론자들은 아마추어 역사가인 박창화가 향찰로 향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진서론의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위서론자들까지 위서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위서론

용수 문제

용수 혹은 용춘은 바로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아버지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이 형제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수의 사망시기에 대한 필사본 《화랑세기》의 기록은 황룡사탑의 중수기에 보이는 용수의 사망시기에 대한 기록과 배치된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이후에도 용수는 생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사본 《화랑세기》는 선덕여왕이 즉위하기 전에 용수가 죽었고, 그 처와 아들을 아우인 용춘이 부양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하고 있다.

박창화의 자질 문제

박창화가 저술한 다른 책들의 성격도 진위를 판별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 그가 지은 것 중 '도홍기', '홍수동기', '어울우동기' 같은 음란 소설이 많다. 그가 쓴 수십권이 넘는 책 중 성이 모티브가 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박창화가 위서를 만들려 한 예가 있다. 그가 남긴 유고에 '유기추모경'이 있다. 유기고구려 초기에 편찬된 사서의 이름이고 추모주몽의 다른 표기이다. 박창화가 썼으면서 고려 시대의 인물인 황주량이 왕명을 받아 쓴 것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기추모경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박창화의 다른 유고인 '추모경'은 한지에 쓰여 있고 황주량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는 위서를 만들려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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