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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보(函普) 또는 한푸금나라의 시조(金始祖 재위: 941년~960년)였다. 그의 장남 완안오로(完顏烏魯)는 금덕제(金德帝)로 추숭되었다. 함보(函普)는 금나라 황실 완안씨의 시조이다. 금나라 당대에 쓰인 송막기문에는 금시조의 이름을 감복(龕福)이라고 하였고 만주원류고에는 합부(哈富)라 하였다.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시조는 완안부에 이르러서 오랫동안 거주하였다. 그 부(部) 사람들은 양 족속 간에 사이가 나빠 서로 싸웠는데, 이를 풀 길이 없었다. 완안부의 사람이 시조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약 이 원한 관계를 풀게 해서 양 족속들로 하여금 서로 죽이지 않게 한다면, 부에 나이 60인데도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진 여인이 있는데, 그와 짝을 맺어 주겠다.” 하였다. 이에 시조가 그러겠다고 승낙하고, 직접 가서 깨우쳐 주니, 원한 관계에 있던 집 사람들이 약속한 대로 지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부의 사람들이 신복(信服)하면서 청우(靑牛) 한 마리를 주어서 사례하였으며, 아울러 60세 먹은 신부에게 장가드는 것을 허락하였다. 시조가 청우로써 납빙(納聘)하는 예를 갖추고 신부를 맞아들였다.

그 뒤에 아들 둘을 낳으니, 장남은 오로(烏魯)이고 차남은 알로(斡魯)이며, 딸 하나는 주사판(注思板)이다. 이에 드디어 완안부 사람이 되었다. 천회(天會) 14년(1136, 인종14)에 경원황제(景元皇帝)라고 추시(追諡)하였다. 《금사》에 따르면 신라왕의 김씨성이 나라 이름 금이 나온 먼 갈래이다. 금사(金史)에 의하면, 금나라의 시조인 완안 아쿠타의 조상 함보函普는 고려 출신이라 한다. 안 함보는 함 안을 싸는 보자기이며 겉 함보는 함 겉을 싸는 보자기이다.

《송막기문(松漠紀聞)》에 이르기를, “여직(女直)의 추장(酋長)은 신라 사람으로, 완안씨(完顔氏)라고 불리는데, 완안은 중국 말의 왕(王)과 같은 말이다. 형제가 세 사람인데, 한 사람이 숙여진(熟女眞)의 추장이 되었다. 완안은 나이가 60여 세로 여진의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 여인 역시 60여 세였다. 두 아들을 낳으니, 장남이 바로 호래(胡來)이다. 이로부터 3대가 전해져서 양가태사(楊哥太師)에 이르고, 또다시 아골타(阿骨打)에게 전해졌다.” 하였는데, 이것은 함보(函普)의 사적(事跡)과 유사하다.

김치양 마의 태자설편집

금을 세운 황제는 경주 김씨였던 김치양(金致陽+千秋太后)의 아들인 완안(完顔, 王)씨 함보(函普)이며, 고씨의 별종인 대씨(조영)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세력과 함께 진국(震國)을 세웠다. 함보(函普)는 당시 스님행세를 한 마의 태자 아들로 본명은 金幸(函普는 法名)이었다.

고려의 건국으로 왕건의 시대가 열림에 따라 실각된 궁예의 동생 함보(函普)는 고려 땅에 살수 없어 고려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여진 땅으로 들어가 미개한 여진 사회를 문명으로 인도하였을 뿐아니라, 거란의 통치에 억눌려서 살아온 여진족의 민족 국가인 금나라의 건국을 일구어낸 금나라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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