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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니스

시인 시모니데스에 의하면 리쿠르고스의 아버지는 에우노모스가 아니라 프리타니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모니데스만의 견해이다.

그들은 왕 제도를 유지하였으며 그룹으로 다스렸고, 해마다 프리타니스를 선출하여 도시를 운영하였다. 프리타니스는 왕적인 지위를 유지하였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의 저택이있던 곳은 참주정이 무너진 후 그의 저택은 협의회의 상임 의원들인 프리타니스의 관청 및 회식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페르시아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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