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키스 [Phocis]는 고대 그리스의 중부지역이다.

코린트 만으로부터 북쪽을 향해 파르나소스 산을 넘어 북쪽 경계가 되는 로크리스 산맥까지 펼쳐져 있다. 두 산맥 사이의 비옥한 케피소스 강 유역에는 암피클레이아(또는 암피카이아)·티토레아·엘라테아·히암폴리스·아바이·다울리스 등 대부분의 포키스 취락이 있었다. 파르나소스 산맥에서 코린트 만까지 남쪽으로 뻗어 있는 지맥이 항구도시 안티키라로부터 크리사 평야의 크리사 시와 그 항구인 키라를 분리시키고 있다.

이곳의 초기 역사는 불분명하지만, 주민은 주로 목축 생활을 했으며 이 반도에서 그리스어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던 아이올리스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이전에 동쪽의 보이오티아인과 북쪽의 테살리아인이 각각 침략했다. 전통적으로 델포이 성역을 지배하던 포키스인들은 신성한 신탁소로 가기 위해 키라에 상륙한 성지 참배자들에게서 크리사를 지나가는 통행료를 무겁게 매겼다. 이같은 무례한 행위에 분개한 그리스 국가들은 연합하여 기원전 590년경에 성전(聖戰)을 선포하고 크리사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델포이 성역은 이웃 도시국가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위원회의 통제하에 두었다. 포키스인의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라이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에게 대패했다. 포키스는 플라타이아에서 페르시아 편을 들었다. 기원전 449(또는 기원전 448)년에 스파르타인이 델포이에서 포키스인들을 쫓아냈으나, 포키스는 새 동맹국인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곧 이 지역을 재탈환했다. 아테네의 세력이 기울자 포키스는 다시 흔들거렸고,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 때는 스파르타의 동맹이 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포키스는 끊임없이 보이오티아인의 침략을 받았다. 코린트 전쟁(기원전 395~387) 때 스파르타를 도와 보이오티아를 침략했으나 나중에는 세력이 날로 커지는 보이오티아의 주요도시인 테베에 굴복했다. 포키스는 테베의 정치가 에파미논다스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의 전투(기원전 370~366)에 참여했으나 만티네이아에서의 성공적인 전투(기원전 362)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무관심에 대한 대가로 테베인들은 포키스인들을 종교적 범죄자로 처벌하는 권리를 얻었다. 보복으로 델포이를 차지한 포키스인들은 보이오티아와 테살리아 침략을 위한 용병을 사기 위해 이곳을 약탈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이들을 델포이로부터 몰아내고 포키스의 도시들을 마을별로 나누어 보상금을 강제로 거두었다(기원전 346). 300년 동안 포키스는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96년 아이톨리아 동맹에 합병되었다.

고대 포키스는 현재의 프티오티스 주와 포키스 주의 남동부와 일치한다. 이들 주의 주도들은 각각 라미아 와 암피사 이다. 밀·올리브·포도 농사가 중요하며 가축 사육업도 중요하다. 파르나소스 산맥에서 보크사이트를 채굴하고 고대의 안티키라 근처 아스프라스피티아에는 알루미늄 환원 공장이 있다. 키라가 있던 근처의 작은 이테아 항은 델포이로 가는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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