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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panties)는 짧은 길이의 하반신용 속옷을 말한다. 형태에 따라 사각팬티, 삼각팬티, 브리프 등으로 구분되며 면을 사용한다.

2월15일을 대만에서는 노-_-팬티 데이라고 부른다 한다. 팬티를 입지 않는 날이 아니라 팬티를 입고 거리에 나서는 날이다. 시내에 늘씬한 미녀들이 팬티만 입고 지하철과 거리를 활보한다.

삼각팬티를 입는다고 성기크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삼각팬티를 입으면 성기에 땀이 생겨서 정력에 좋지 않다. 팬티는 바람이 잘통하는 사각팬티를 입는것이 좋다.

팬티라 하면 우리들이 알몸에 맨 먼저 받쳐입는 옷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상시로 입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다. 허리춤에 고무줄이나 고무줄로 된 띠를 달아 몸에 꼭 끼이게 된 오늘날의 팬티를 입게 된 것은 우리 나라의 섬유산업이 발달하여 옷이 흔하게 된 1970년대 무렵부터라고 한다. 초창기의 팬티가 우리에게 쉽게 보급되게 된 것은 일등공신으로 '쌍방울'을 부정할 수 없다. '딸랑딸랑 쌍방울..'로 시작되는 쌍방울 시엠송은 육칠십년대 무렵 많이 듣던 노래였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960년대 익산에 사시던 분들이라면 현지에서 쌍방울이 창업하게 된 데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드라마틱한 고사 한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6.25 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조선조부터 우리나라 서부 목화 산업의 중심지였던 '솜리(솜이 많이 난데서 붙여진 지명으로 일제에 의해서 裡里로 개명되었다가 지금의 익산시로 바뀜.)'의 한 허름한 고물가게에 일제때 쓰다가 버려진 공업용 미싱 2대가 들어왔다. 영감님은 2대의 미싱에서 사용가능한 부품들을 모으고 빠진 부품은 혼자 머리를 짜내어 일일히 손으로 해결하여 거의 완벽한 수준의 미싱 1대를 기여코 완성하고야 말았다.

영감님은 그걸로 뭘 할까하고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마침내 광목천을 이용하여 속곳을 만들어 볼 요량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팬티를 만드는 기업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1953년에 형제상회를 설립했다가 차츰 공장의 규모가 커지자 10여년 만에 삼남메리야스라 칭하였다가 이듬해인 1963년에 영감님의 고향인 쌍녕마을을 따서 쌍녕섬유공업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쌍녕섬유의 쌍녕(雙鈴)이 쌍방울을 뜻하는 말이라 상표를 '쌍방울'로 쓰게 되었는데 이는 묘하게도 남성의 쌍방울을 뜻하는 은어라는 이유로 일약 속옷의 대명사로써 유명세를 타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기성복 팬티가 나오기 전의 언더웨어는 몸에 꼭 끼는 것이 아니라 헐렁하여 허리춤을 핀을 꿰어 매도록 했거나 단추나 헝겁끈으로 졸라매는 형식의 것들이었다.

이것도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에 들어가서 보급되기 시작한 것들이다. 물론 우리 조상들도 팬티를 입기는 했다. 역사를 보면 유럽에서보다 훨씬 먼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널리 애용되고 있는 것이나 또는 1940년대의 고전적인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전래의 팬티는 '속중의(內中衣)' 또는 '속바지'라 하여, 허리춤에 옷고름처럼 끈을 달아 여미는 바지의 축소판이었다. 농군들이 여름에 논매기를 할 때 입던 잠방이도 팬티라기보다 보통 바지의 가랭이만 짧게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팬티와 기초적 기능은 거의 같으나 모양과 작용은 판이하다 할 것이다.

팬티를 입지 않았다는 뜻의 '노팬티(no panty 또는 no panties)'는 얼핏 보면 영어같습니다만 영어 사용권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동양에서 그것도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팬츠 또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뜻으로 유식한체 하던 사람들에 의해 방송을 타면서 널리 쓰이게 된 조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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