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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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그리스어: Θησεύς)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으로 아에트라의 아들이며, 아에게우스와 포세이돈이 아버지이다. 테세우스는 페르세우스, 카드무스 또는 헤라클레스와 같이 시조이며 아티카 전설 속의 위대한 영웅이다. 그는 이오니아의 창건하였다.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이고, 어머니는 트로이젠 왕 피테우스의 딸 아이트라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이트라가 부모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자식이 없던 아이게우스는 피테우스의 허락을 받고 아이트라에게서 아들을 낳는데, 이 아들이 테세우스이다. 테세우스가 어른이 되자 아이트라는 테세우스를 아테네로 보내는데 여행중에 테세우스는 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코린트의 이스트모스에서는 희생자들을 구부린 두 소나무 사이에 매어 찢어죽임으로써 '소나무를 구부린 사람'이라고 불리던 시니스를 죽였다. 또한 크롬미온 돼지(또는 멧돼지)를 죽였고, 자기의 발을 씻어주고 있던 손님들을 바다 속으로 차넣던 괴팍한 스키론을 절벽 아래로 내동댕이쳤으며, 자기 쇠침대 길이에 맞춰 방문객들의 몸을 잡아늘이거나 잘라내던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였다.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도착해보니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마법사 메데이아와 결혼했다.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보다 먼저 테세우스를 알아보고 아이게우스를 설득해서 그를 독살하려 하지만, 마침내 테세우스를 알아본 아이게우스 1세는 그를 왕위 계승자로 선포한다. 숙부 팔라스의 아들들의 음모를 쳐부순 테세우스는 마라톤의 불을 내뿜은 황소와 싸워 이긴다. 다음에는 크레타의 전설적인 미로에 갇혀 있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와의 모험이 전개된다( 미노스 , 미노타우로스 , 아리아드네 ). 그런데 그 전에 테세우스는 만약 자신이 크레타에서 이기고 돌아오게 되면,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질 희생자들을 싣고 다니는 죽음의 배가 바다로 전진할 때 꽂고 다니는 검은 돛 대신 하얀 돛을 올리겠다고 아이게우스에게 약속했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이 약속을 그만 잊어버리고 검은 돛을 단 채 돌아오게 되며, 이것을 발견한 아이게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몸을 던져 죽는다.

그후 테세우스는 여러 아티카 공동사회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고 아티카의 영역을 코린트의 이스트모스에까지 확장했다. 또한 멜리케르테스(→ 레우코테아 )를 기념하는 이스트모스 경기에 포세이돈을 기념하는 경기종목을 추가시켰다. 혼자서 또는 그리스 영웅과 함께 아마존의 왕녀 안티오페(또는 히폴리테)를 사로잡는데, 그결과 아마존족이 아테네를 침공하고 히폴리테는 테세우스의 편에서 싸운다. 테세우스는 히폴리테에게서 히폴리토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은 테세우스의 부인인 파이드라의 연모를 받는다. 테세우스는 아르고 선(船)의 탐험과 칼리도니아의 멧돼지 사냥에도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테세우스와 라피테스족 출신 페이리토오스의 유명한 우정은 페이리토오스가 테세우스의 소 일부를 몰아간 것을 계기로 시작된다.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를 추격하는데, 마침내 페이리토오스를 따라잡았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경모하며 의형제를 맺는다. 그후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가 헬레네 를 납치하는 것을 도와준다(→ 색인 : 헬레네). 마찬가지로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가 데메테르 여신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구출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함께 하계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두 붙잡히게 되어 헤라클레스가 테세우스를 구출해내기까지 지옥에 감금된다.

아테네에 돌아온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 에렉테우스의 후손 메네스테우스가 주도한 반란에 직면한다. 이 반란을 가라앉히는 데 실패한 테세우스는 자식들을 모두 에우보이아로 보내고, 아테네 사람들을 저주하며 스키로스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는 그를 벼랑 끝에서 바다로 집어던져 죽인다. 훗날 아테네 사람들은 델포이 신탁의 명을 쫓아 테세우스의 뼈를 가져다가 아티카 땅에 묻는다. 테세우스를 기리는 주요축제인 테세이아는 피아놉시온(10월) 8일이지만 매달 8일마다 그를 기린다.

아테네인에 의해서는 개혁자로 고려된다. 그의 이름은 테스모스(그리스어: θεσμός, "thesmos", 인스티투션)와 같은 어원 에서 나왔다. 그는 아테네 아래의 아티카의 노동여행으로 대표되는 아티키 지역의 정치적 통합(그리스어: συνοικισμός, "synoikismos", 시노이키스모스)을 책임졌다.

그는 통일왕이였기 때문에 테세우스는 아크로폴리스의 요새위에 왕궁을 건설하고 입궁하였다. 그것은 미케네에서 발굴된 것과 흡사하다. 파우사니아스가 기록하기를, 통일 후에 그는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기슭에 아프로디테페이토의 상을 세웠다고 한다.

희극 《개구리》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테세우스를 수많은 일상 아테네 전통을 만들어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의 패권을 다룬 이론[1]이 옳은 것이라고 가정할 때, 테세우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아테네 문명의 미노스 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적은 테세우스의 열전에서, 플루타코스는 테세우스가 한 일들 – 미노타우루스를 물리치고, 미궁을 빠져나오고,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지고 한 일들 – 에 대해 여러 각도의 설명을 하고 있다. 플루타코스가 인용한 참고문헌에는 페레키데스, 데몬, 필로코루스, 클레이데무스의 것 등이 있으며, 이들 문헌들은 오늘날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2]


같이 보기[]

전 임
아에게우스 1세
제10대 아테네의 왕
기원전 12047년 ~ 기원전 1181년
후 임
메네스테우스

주석[]

  1. 미노스 문화적 패권은 발굴되는 토기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패권과는 꼭 관련이 없다.
  2. Edmund P. Cueva, "Plutarch's Ariadne in Chariton's Chaereas and Callirhoe" American Journal of Philology 117.3 (Fall 1996) pp. 47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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