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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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왕은 고구려의 건국시조 어떤 사람은 동명왕이나 추모왕 같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술했다.

왕망이 엄우의 간언을 듣지 않고 그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한 바 엄우는 고구려장수 연비(延丕)를 꾀어 목을 벤 후 장안(長安)으로 보냈다 (漢書. 後漢書. 南史. 北史 모두 高句麗侯 騶라고 했다). 왕망은 기뻐하며 고구려왕을 ‘하구려후(下句麗侯)’로 이름을 바꾸고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한(漢)의 변경은 더욱 심하게 침범 당하게 되었다.

한서. 후한서. 남사. 북사에는 모두 왕망에게 살해된 것은 고구려후 추(騶)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삼국사기의 분주(分註)는 설명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鄒=騶이다. 왕망은 고구려가 출병을 거부하자 AD 12년 추모왕을 죽이고 그의 이름 추(鄒)를 ‘마(馬)’변의 추(騶)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이것은 왕(王)을 후(侯)로 바꾸고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 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의 모욕이다. 이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모두 모른 척 하고 있다. 의문조차 제기하려 하지 않는다. 백과사전에도 이에 관한 설명은 없고 추모왕에 관해서는 그의 건국과정과 건국신화만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삼국사기는 왕망에 의하여 살해된 사람이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이 아니라 고구려 장수 연비라고 했지만 이것은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旧三國史』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던 것을 김부식이 충실하게 옮겨 적은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분주(分註)는 김부식이 써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