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淸海鎭)은 통일신라 군진이였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장보고(張保皐)에 의해 지금의 완도에 설치된 군진(軍鎭)이다. 중국·일본과 신라를 잇는 해상교통로의 요지에 위치하여 851년(문성왕 13)에 철폐되었다.

청해진은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 장군이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하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다. 장보고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중국과 일본 해로의 요해처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당나라 서주(徐州)에 들어가 군중소장(軍中小將)을 지내던 신라인이였다. 장보고는 당나라의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가 된 동포들의 참상을 보고 분개, 벼슬을 버리고 귀국하여 해적들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한다. 청해진은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 장군이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하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다. 장보고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중국과 일본 해로의 요해처인 청해에 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의 국방력은 신라의 국방력과는 다르다. 신라군은 주로 발해·북방민족에 대한 방어를 위주로 한 육군주력군이었다. 이에 비해 청해진군은 활발한 무역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해군주력군이었다.

드라마 ‘해신’이 방영된 이후 관람객이 증가하자 나무로 다리를 만들고, 부근에 장보고기념관까지 만들었다. 청해진에 대한 발굴작업이 1991년부터 있었는데, 장도에서 흙으로 쌓은 성터와 통일 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등이 발굴되었다.

서남해(西南海)지역에서 해외무역을 포함한 상업활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장보고(張保皐)의 해상활동에서 비롯된 것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예전에 산동성=청해진설은 논파가 되었건걸로 아는데 아직도 그걸로 설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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