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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궁(千秋宮)은 고려의 태후궁중의 하나였다. 넓은 대궐 안 남쪽에 자리잡은 몇 채의 전각과 그것을 둘러싼 담장 안뜰을 천추궁이라 부른다.

천추 태후는 친자매와 함께 경종을 받들었으며, 외가의 성을 따라 황보 (皇甫)라 하였다. 경종이 죽고 천추궁 (千秋宮) 에 있을 때 , 외척인 김치양 (金致陽) 의 출입이 잦아 추문이 퍼졌다. 일찍이 거짓 삭발하고 천추궁(千秋宮)에 출입(出入)하여 자못 추성(醜聲)이 있어 성종(成宗)이 이를 알고 먼 곳에 곤장 쳐서 유배하였다. 천추태후의 외척이었는데, 경종이 죽은 뒤 머리를 깎고 중을 사칭하며 천추궁을 드나들다 추잡한 소문을 일으켜 장형을 받고 먼 지방으로 귀양보내진 인물이었다. 송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하자, 이에 크게 분노하여 성종과 맞선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성종이 천추궁의 사병을 해산시키자, 그 충격으로 쓰러진다.

997년 성종이 죽고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천추궁에서 섭정하면서 천추태후(千秋太后)로 불렸으며 김치양을 우복야겸삼사사(右僕射兼三司使)에 임명해 유배를 풀어주고 개경으로 돌아오게 했다. 유배에서 돌아온 김치양은 태후궁인 천추궁을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또다시 천추태후와 사련을 불태웠다.

천추 태후에 관해 실록된 역사적 기록은 지극히 짧다. "고려시대 경종의 왕후이자 목종의 모후, 천추궁에서 섭정하며 권력을 움켜쥔 여인, 그리고 김치양과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로 전복을 꿈꾼 요부."이다. 아들 목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한 뒤에 섭정을 했으며, 또한 천추궁(千秋宮)에 머물렀다 해서‘천추태후’로 불리었다. 다행히 목종은 당시 18살의 성인이었지만 무척 효심이 깊어 그녀의 뜻을 잘 따라주었다. 자신이 머물던 천추궁의 이름을 따 천추태후라 이름하고는 이제까지의 성종의 개혁을 원점으로 돌리는 일대 개혁을 시작한 것이었다. 목종이 일찍 죽고 할 일(섭정)이 없어진다.

강조는 천추궁의 공주시절부터 황보수(채시라 분) 곁을 지키는 남자였다.

북두의 제일성인 탐랑성은 천추생기궁으로 오행은 목(木)이다. 주로 총명, 문필, 부귀, 관직 등을 관장하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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