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DOM


45px 이 문서는 한국어 중력위키아의 가설융합수렴설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사용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검색 수렴하여 작성되기는 하였지만, 모든 사용자가 반드시 동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설의 내용이 총의(컨센서스) 중의 상태로 반대 증거가 있으시면 이 페이지의 내용 편집해거나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에 의문이 있다면 우선 토론란에서 의견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45px 이 문서는 한국어 신화 백과의 가설 신화진담설입니다.
이것은 사용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검색 수렴하여 작성되기는 하였지만, 모든 사용자가 반드시 동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설의 내용이 총의(컨센서스) 중의 상태로 반대 증거가 있으시면 이 페이지의 내용 편집해거나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에 의문이 있다면 우선 토론란에서 의견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대량 멸종
대멸종

지구 테라포밍

지구 테라포밍 시나리오테라포밍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여름, 가을, 겨울 다시 편집

아즈텍 신의 선세계에 따르면 치우 천황 시대(쌍천하)에 태양계에 대형 행성 마고성이 태양에 융합되고 니비루는 태양에 들어갔다가 흑점들을 포획하여 나왔다. 지구는 목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안쪽으로 이동하고 니비루는 태양에서 나와 바깥 궤도로 이동하였다.

여름편집

지구는 원래 목성의 위성으로 달착륙 이전의 상태로는 현재의 궤도에서는 물로 뒤덮힌 행성으로 대부분 늪지대로 되게 되어 있었다. 배달국 한웅의 후손 단군왕검이 3천명을 이끌고 천손강림한 장소는 태백산 신단수였다. 후예구성에 따르면 니비루 즉 행성 달의 외위성들이 지구와 대량 충돌하였다. 하나라낙수의 물이 말라서 망하였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같다.

가을편집

지구와 달의 거리를 점점 줄어들고 결국에는 지구와 달에 여러 바다를 만들고 압착 접합(지구 달착륙 사건)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생태계는 매우 딱하게 되었다. 대량 멸종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저지에 갖혀있던 물들이 충돌의 충격으로 홍수를 일어켰다.

더우기 지구와 달의 충돌로 외위성들이 속속 다가왔다.

이 시기는 기원전 1800년경으로 전해지는 성탕에의한 상나라(은나라)의 건국 시점으로 생각된다. 상나라에 탁상처럼 놓여 있었다. 태평양을 상판으로 하는 탁상형으로 접점은 지중해+사하라 사막이였다.

지구는 태평양중원으로 생각되며 대야 처럼 되어있어 중앙에 바다가 있고 그 해안 부근에만 살만하였다. 뮤 대륙에서는 마문명 또는 마야 문명이 있었고 태평양 중앙해의 고리는 점점 커졌다. 은나라 시대에은 홍수에 7회 천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편집

달의 자전이 느리고 태평양의 바다의 수위는 높아가기 시작하였다. 수위가 대양의 외각에 도달하자 해안들은 응달로 지구에는 빙하기가 찾아왔다. 그리하여 은나라가 되었다. 태평양 변두리 지역에는 엄청난 빙하가 쌓여 있었다. 지구와 달이 다시 떨어지는 사건이 아마도 은나라 말기인 기원전 1200년경이다. 은나라는 황하의 물이 말라 망하였다.

봉신연의에 따르면 은나라 말에 봉신대가 있는데 그것은 노아의 방주에 대응이 된다. 지구가 다시 부상한 원인으로는 봉신연의에 언급된 형벌인 해시, 채분, 포락 과 가장 힌트로 생각되는 대나무통으로 맹인을 만드는 형벌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달의 바다인 증기의 바다 오른편에 위치한 코페르니쿠스 충돌구에 의한 것이다. 당시의 사방은 현재와는 직각으로 되어 이스터가 동쪽이며 오세아니아 대륙이 남쪽, 알라스카가 서쪽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봉신연의의 구황후(강황후)는 코페르니쿠스에 대응이 되고 동백지역에 충돌하였다. 남백 악후가 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병합한것에 대응되며 백읍고 사건은 알류산 열도가 생성된 연유로 추정된다.

편집

주나라 시대 지구가 구슬 같은 위성으로서 외위성 충돌로 인해서 호상 열도궁상 산맥등의 외륜산이 생성되면서 자전의 증가가 발생한다. 지구가 마치 술취한 듯이 비틀거리는 시대였다.

여름편집

춘추 시대태평양서안에서 지진이 나면서 동안의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의 낙양으로 동천하여 동주가 되었다. 그곳은 아마도 남태평양의 티히티 섬이 있던 지역일 것으로 생각된다. 타히티중원오악태항산에 대응이 되고 하와이여산에 대응이 된다.

가을편집

전국 시대 주나라 없는 태평양의 서안에서는 진나라가 통일을 하였다.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쌓았다. 중국에서는 만리장성(萬里長城, Great Wall of China)을 간략히 칭하여 ‘장성(長成)’이라고 부른다. 진한조에 의하면 진한의 노인들이 말하길 진나라의 만리장성 고역을 피해 한(韓)나라로 왔는데, 마한(馬韓)이 그들에게 동쪽 땅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수백만명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길이 5000㎞가 넘는 인류역사상 불가사의한 토목공사다. 만리장성은 한꺼번에 만든것이 아니다. 진나라 전부터 제후들이 쌓은 성을쌓아 만든것을 계속 이어 붙인 성이다. 전국시대 조, 연, 진 삼국이 축조한 장성을 연결시킨 대공사로 마침내 진나라의 만리장성이 축조되었다. 만리장성은 만리를 넘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진나라는 북부여를 두려워했다. 하여, 시황제는 다른 어떤 나라들 보다 북부여를 두려워 하여 만리장성을 쌓게 한 것이다. 시황제는 다시 북쪽의 흉노를 쫓아내어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남쪽은 광둥성[廣東省] ·광시성[廣西省]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하였다.

겨울편집

전한 시대도 역사의 주무대는 뮤 대륙이였고, 현재에도 류큐 제도가 오키나와에 약간 남아 있다. 고구려 초 주몽소서노와 관련있는 고산국은 대만에 있다.

우칭취 ( 武清区 ) 란청 ( 兰城 ) 유적과 묘지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던 중 폭이 5.2m 에 달하는 서한 시기의 고대 도로를 발견했다. 동방의 비단을 서방 세계로 이동하는 데 이용하던 비단길 또한 고대 도로의 하나였다. 포두는 진한(秦漢)시대엔 내몽골 최대의 교통요지였다. 장안 교외의 별궁인 감천궁(甘泉宮)으로부터 포두까지 길이 약 1000km의 군사도로인 직도가 있었다.

한편 고대 도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중 하나는 역시 로마의 도로였다. 500년 동안 로마인이 제국 전체에 건설한 도로의 총길이는 간선도로 80,000km, 지선도로까지 총 150,000km에 이른다.

편집

위진남북조 시대 서기 300년 무렵 조성된 고대 도시의 도로 유적이 서울 풍납토성에서 확인됐다. 이번 도로 유적 발굴은 풍납토성은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시대(BC 18-AD 475)의 왕성(王城)이다.

수나라의 성립 배경은 "위진남북조"라는 약 370년 간의 혼란 시대가 있었다.

여름편집

수나라,당나라 시대 비수 전투 200년 뒤 수나라 왕조가 대운하를 뚫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사업은 만리장성에 견줄만한 대공사였다. 수나라의 중국통일 중국의 역대 왕조들의 도읍으로 가장 오랜 세월 동안 택하여진 곳은 장안(지금의 서안)이다. 대운하는 수문제의 뒤를 이은 수양제 때 본격적으로 이루어 진다. 수나라에게 운하라는 것은 위진남북조 이후 세력이 커진 강남귀족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운하라는 그 당시로는 엄청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로를 건설하였다. 수나라 양제-양광은 대운하를 건설할 때, 40여개의 행궁을 지었으며, 운하 옆에는 대로를 건설해서 그 옆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심었다. 대운하 건설에는 자그마치 1억 5천만 명이나 동원되었다. 결국 수나라 운하 건설은 인력보다는 홍수물길의 힘으로 연결된 것이 타당하다. 수나라는 운하를 파서 국력을 낭비하여 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운하 주변의 도시 발전은 물론, 그 지역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나라는 운하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만큼 물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605년 수나라의 양제는 창안에서 뤄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운하의 건설을 착수했다. 경항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은 6년이였다. 운하의 개통은 지리적인 영향으로 분리되었던 중국을 통일하는 대동맥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당나라 시대에 당의 비단이 유럽 세계에 많이 수출되었다.

가을편집

송나라 시대

상나라와 유사

양산박, 중세 암흑기

겨울편집

금나라, 원나라 시대, 원나라는 도로를 정비하고 상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역을 만들었다.

은나라와 유사 요나라에서 원나라로 패권이 이동

편집

명나라 시대

장성은 진나라 때의 장성이 아니라, 명나라와 청나라에 걸쳐 완성한 장성이다.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이다.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서 세워진 명나라때 축조된 만리장성은 중국이 다시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지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난하의 동쪽에 있는 산해관은 명나라 때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끌어당겨 이은 곳이 되는데,서기전202년 한나라 때까지 만리장성의 동단은 난하를 건너지 못하였다. 그것은 명나라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요동까지 쌓았다는 것이다.

북으로는 흑산현벽장성(黑山懸壁長城)을 남으로는 천하제일돈(天下第一墩)을 잇고 있는데 명나라 만리장성의 맨 서쪽 끝 요도이면서 예로부터 하서지역의 제일의 요충지이기도 했던 곳이다. 중국은 남은 장성의 보호를 위해 보수에 들어갔고, 얼마 전에는 만리장성의 한 부분인 명나라 장성의 일부를 복원했다. 명나라 때 건축된 장성 가운데 벽체가 완벽하게 보존된 구간은 20% 미만 정도다.

우리나라 사신이 명나라와 청나라에 내왕하던 길을 연행로 또는 사행로라고 하는데 이 도로는 동시에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이 서울로 들어오는 길이기도 하였다.

여름편집

청나라 시대, 청나라 황제는 만리장성을 수리하자는 신하의 주청을 물리쳤다. 장성으로 적을 방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장성 북방의 열하에 피서산장을 건립하였다.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 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진시황제 이후 장성을 돌보지 않은 왕조는 청이 유일하다. 청나라는 만리장성에 기대는 전쟁 대신 외교라는 유화적인 방법으로 이민족과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청나라 때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몽골과의 정치적 경계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런데 명나라 장성은 청나라 후기까지도 계속 늘이고 있었다. 언제 공사정지했다는 똑똑한 시간은 없다.

가을편집

중화인민공화국 시대, 아스팔트 포장 도로가 놓이기 시작한다.

겨울편집

다가올 겨울을 준비합시다.

어디서 왔나편집

환웅국에서 왔다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태웅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큰곰자리작은곰자리에 있는 별로 생각되는데 가까운 별일수로 밝으므로 북두칠성 내지는 북극성이다.

어쩌다 이런 퇴화가 발생하였나편집

금성의 환경은 혹독하였고 자원은 늘상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Community content is available under CC-BY-SA unless otherwise no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