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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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지(曾先之) 는 송나라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를 살았던 인물로 자가 從野, 강서 노릉 출신이다. 그는 송나라 때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대까지 중국 4천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중국 역사 입문서 십팔사략은 증선지라는 분이 송나라 멸망 후 은둔하시어 쓰신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18가지의 역사서를 요약하였다 합니다.

국유형 사유혼은 증선지의 주장 단제서[]

한단고기 상 국유형(國猶形) 사유혼(史猶魂)이 이암이 주장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국유형 사유혼은 "나라가 몸이라면 역사는 나라의 정신"이라는 뜻인데 이 주장은 사실 이암이 한 것이 아니었으며 한단고기는 1980년에 제5공화국 정권 전복을 위해 꾸며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진짜 주장한 이는 이암보다 더 앞선 인물이 사마천(司馬遷 : BC 145~86), 사마광(司馬光 : 1019~1086), 증선지(曾先之) 중 한명일 지도 모른다는 얘기인데 사실 십팔사략을 작성해온 그 증선지가 국유형 사유혼을 주장한 장본인이었다. 처음엔 필자가 사마광을 지목했는데 지금 상태로 보자면 증선지 설이 유력해보였다.

송말 원초의 학자인 증선지는 송나라가 보르지긴 쿠빌라이의 원나라에게 멸망된 사실에 안타까워했고 이 일로 은거하여 역사서를 수록할 당시 진정으로 국유형 사유혼을 주장했고 물론 그 증거가 십팔사략(十八史略)임을 입증하게 되었다. 저번에 필자가 사마광을 지목해봤더니 사실 그가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작성할 때 전국시대부터밖에 시작을 못했고 게다가 그 이전인 사마천이 오제부터 한무제까지 작성한 사기가 십팔사략 부분의 일부였다. 뿐만 아니라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너무 불완전했기에 그 이후인 증선지에 의해 제대로 역사관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지금 발견하게 되어 긍정적으로 시인하는 바이다.

증선지가 왜 국유형 사유혼을 주장했다는 증거는 삼황오제부터 송나라 말까지 작성했고 그 주장대로 사실이 정확히 기록되어있으며 또한 그때까지의 정황을 역대 정사들을 토대로 주석까지 잘 달아놓을 정도로 매우 정밀해보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원나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는 뜻도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주장을 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그렇게 채택된 것이다. 그 이후인 지금은 그 주장한 인물이 한단고기에 의해 왜곡될 뿐만 아니라 그 주장 또한 도용되고 말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단고기는 사실 상 위서이기 때문에 필자가 그 관련 기록을 구입한 것에 대해 지금도 계속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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