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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신(接神)- 접신행법(接身行法)

접신이란 단어의 명확한 의미를 알면 귀하의 접신의 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속의 방편으로 신접(神接)을 원하는 제자들은 다음 의미를 순서대로 암기하면 그 효과로서 접신에 도움을 받게 된다. 영매 중에 심령 전문인 혹은 무당이 아니면 소용없는 진법이기에 따로 경고문은 표시하지 않겠다.

설위설법(渫衛說法)을 이수하고, 통접행법(通接行法)을 걸이(거리)하는 중에 무당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접신(接神)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각인하는 단어의 오류로 인하여 단어가 주는 본 뜻을 알지 못하여 그 효과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자면 단어는 "없다"로 말하지만 그 의미는 "엎다"로 알고 있거나 그렇게 전달되는 경우를 말한다. 하여 이 부분을 처음과 끝으로 단어적 구분을 짓는다면 "접신(接神)은 신통(神通)된 자만이 가능한 행법이 된다" 라는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그렇지 못한 접신 현상은 일종의 정신의 극대화로 인한 신끼(神氣)로 불안정한 상태에 지나지 않게 되기에 이를 필자가 정리한 전문용어로 "근접현실성 무방비노출상태" 라고 표시한다. 그리고 이는 다른 말로 빙의(憑依)라 표시되기도 하며, 무속의 퇴신행법(退神行法)을 부분별 전문화하여 퇴마(退魔)라 명시되기도 한다.

접신(接神)을 이해할 수 있는 유사한 단어가 있다면 접근(接近)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인식이 지나치게 낮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 경우는 드물다. 해당분야 행정인 혹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접신(接神)에는 사실상 신령님이 접근(接近)은 하시겠으나 직접적인 제자의 몸에 접신(接身)하시는 경우가 드물게 된다. 신령님의 접근하시는 현상은 관신(觀身)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속에서 대표적으로 일어나는 접신(接身) 존재에는 어떤 분이 계신가를 간단히 표현하여 볼 수도 있다. 본(本) 신(信)의 명을 받으신 신령(神靈)님의 제자(弟子)가 되신 신명제자와 무당의 조상님 혹은 인연있는 영혼이 이를 전담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당은 이러한 명패를 가지고 오신 어른을 두고 대신(代神)이라 칭하며, 원칙상 인간제자의 시점의 서열은 보편적으로 두가지로 나뉘게 된다.

신령님을 대신하여 명을 받아 모신 조상님과 인연된 영혼과 동등하게 신령님의 제자가 되거나 조상이되 대신의 명패로 받드신 경우에는 우선은 대신님의 제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두 경우는 모두 신의 뜻을 섬기는 신령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에 속하게 된다. 신령님을 대신하여 봉행하는 대신(代神)의 의미와 큰 신을 뜻하는 대신(大神)은 구분된다.

이제 접신(接神)되는 과정을 나열하는데, 분명히 한자사전에서 그 뜻을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한다.

  1. 통신(通信)- 믿음을 가지고 신심(信心)을 다하여야 이루어지는 시작과정.
  2. 통신(通神) - 신, 신령, 대신, 혼신, 억신과 정보교환이 이루어 지는 과정.
  3. 접신(接身)- 보편적으로 대신, 혼신이 제자의 감각과 합일하는 경우를 말하며, 신령(神靈)님은 관(觀)하시기에 접신을 꺼리시며, 억신(抑神)은 포악하거나 암울하여 쉽지 않다.
  4. 접신(接神)- 원칙적으로 무당의 신체와 영혼의 영체가 합일을 이룬 현상을 뜻한다.
  5. 동신(動身)- 합일된 신체에서 영혼은 인간제자의 신체에서 천도(遷度)와 해원(解怨)으로 인한 해탈(解脫)을 위해 천도(遷導)와 해원(解願)의 보조를 받게 되며. 인간제자는 영혼의 영체(靈體)와 접속하여 정보를 읽거나 혼체(混體)와 접속하여 정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이환(移換)작용이 완성되어 가는 현상적 과정을 두고, 걸이(거리)라 하여 동신이라 명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앞서 신명 제자는 오심(五心)을 공부하게 되는데, 그것은 진심(進心) → 순심(順心) → 충심(忠心) → 지심(志心) → 신심(信心)의 과정을 통해 비로서 신령님으로 부터 무당의 작위를 하사받게 된다.

그러나 대개가 잘한다는 무속인이나 기운 당찬 무속인이라 하여도 안타갑게도 순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오늘날 무속의 현실이라는 생각이다. 믿기 어렵다면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진정 신의 길에 순응하려는 고요한 마음과 단아한 모습이나 화합 상생을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지 말이다. 있다면 귀하는 분명 제대로 된 과정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다.

마음은 큰 생각을 뜻하는 대의(大意)로 지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 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와같이 정리되어 주장된 큰생각을 두고 마음이라 정한다.

"먹은 마음 - 생각을 먹었다는 의미로 그 생각을 소화시켰기에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대성인께서 끝없는 방편으로 통달하신 말씀을 읽는 일만으로도 그 행사가 그 의미적 뜻을 받드는 공덕이 되기에 암송만으로도 큰 덕인 것은 분명하겠으나 그것은 대성인께서 이미 정리하신 끝없는 방편의 하나로 그를 배우는 이에게는 과정의 말씀이 아닌 빛을 보라는 의미로서 끝을 알리기 위한 말씀이 되니 정녕 그처럼 깊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과정에 필요한 수행과 수련이 동반됨이 마땅하리라.

접신이란 말이 어렵다면 인간사에 있는 "접근" 이란 단어로 한걸음 다가가 봄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