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위조는 화폐제조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금속화폐가 등장한 것이 기원전 650년쯤인데, 기록상 최초의 화폐위조범은 기원전 540년 무렵에 나타난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조폐기관과 위조범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조폐기술은 위폐범과의 싸움 속에서 발전된다거나, 조폐 역사는 위폐범과의 투쟁의 역사라 하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화폐 위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나 첨단 조폐 기술의 개발 역시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화폐 위조 발생 현황을 보면, 1995년에 5건(5장), 1996년에 8건(28장), 1997년에 23건(1,131장)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천연색 복사, 실크 스크린 등 위협적인 위조 수법이 출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항하는 우리공사의 기술은 고심도 요판인쇄, 컴퓨터 그래픽, 특수 형광이나 적외선 잉크, 입체 은화 등의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중세 중국에서는 위폐 근절을 위하여 전국의 뛰어난 위조범을 조폐기관 직원으로 특채하기도 했고, 12세기 영국의 헨리 1세는 위폐가 성행하자 조폐기관 직원에 혐의를 두고는 직원 백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도 있다. 화폐 위조는 집단적, 국제적으로도 자행된다. 이 경우는 상대의 사회적, 경제적 파멸을 일으키려는 의도하에 일으키는 것이 많다.

우리 나라의 경우 조선정판사 사건이 유명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독일 나치스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영국의 파운드 위조계획을 세우고 베를린 근교에 위폐공장을 차렸다.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중 인쇄기술자를 동원하여 만들어낸 위폐는 진품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정밀하였다. 2년여 기간이나 이 위폐가 통용되다가 발각이 되었으니 그 동안의 피해가 막심하였다. 영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도안의 파운드를 발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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