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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심(王尋)은 신나라의 장수였다.

유수는 의거초기에 반란군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의 총명함은 곤양 전투에서 드러난다. 23년, 녹림군은 이미 10만명으로 늘어났고, 한황실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경시(更始)라고 한다. 의거군은 주력으로 완성을 포위공격하고, 동시에 왕봉, 왕상, 유수등에게 2만의 군대를 보내어 북상시켜 곤양, 정릉, 언현을 함락시켜 대량의 물자를 확보하여, 완성의 포위공격에 보태게 한다. 왕망의 도성인 장안은 이로써 아주 위험한 지경에 처한다.

두려움에 빠진 왕망은 급히 왕읍, 왕심으로 하여금 각지의 정예 병사 42만명을 모아서, 곤양으로 향하게 한다. 성을 지키던 녹림군은 8,9천명에 불과했다. 왕망의 부대가 새카맣게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많은 장수들이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때 적군을 피해서 도망치면, 마침 완성을 공격하던 주력부대가 적군의 앞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다. 역사를 새로 쓰는 중요한 순간에, 유수는 냉정한 분석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여러 장수를 설득하여 성을 지키면서, 지원군을 기다리도록 한다. 그 자신은 13기를 이끌고 밤에 성을 떠나, 언현, 정릉으로 가서 구원병을 모집한다. 왕읍, 왕심은 다수의 병력을 믿고, 부하로부터 완성의 포위를 푸는 것이 중요하니, 곤양의 수비군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자는 건의를 받지만 이를 따르지 않고, 곤양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곤양성은 작지만 견고했다. 하물며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맹수와도 같이 죽어라 저항했다. 왕읍, 왕심은 마음이 급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육월 초하루, 유수는 근 만명의 구원병을 이끌고 곤양으로 돌아온다. 선두부대의 1천여명은 왕망의 군대와 4,5리 떨어진 곳에 진을 펼친다. 왕심은 병력 수천명을 보내어 응전한다. 유수는 친히 칼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든다. 수하들도 모두 용감하게 싸워서 천여명의 적을 죽이고 왕망의 군대를 물리친다.

이때 지모가 뛰어난 유수완성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성안에도 보내고, 왕망의 군영에도 보낸다. 한편으로 성내의 수비병들에게 사수의 의지를 강화시키면서, 한편으로 왕망의 군대의 사기를 흔들었다. 이어서, 유수는 30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비밀리에 곤수를 건너, 왕망의 군대 측후방으로 우회한다. 그리고 왕심, 왕읍의 본진을 공격한다. 왕읍, 왕심은 원래 반란군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바로 각 부대에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스스로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응전한다. 양군이 격전을 벌이는데, 유수가 이끄는 정예부대는 용맹하게 싸워서, 왕읍, 왕심의 군대가 혼란에 빠진다. 각 주군병은 왕읍이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하였으므로, 아무도 감히 먼저 움직여서 구원하러 가지 못했다. 그리하여 왕읍의 군대는 궤멸하고, 왕심은 전투중에 목숨을 잃는다. 곤양의 수비군은 이 틈을 타서 뚫고 나오니, 안팍에서 공격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왕망의 군대는 속속 도망을 친다. 그런데, 돌연 폭우가 내려서 강물이 불어나니, 왕망의 군대에서 물에 빠져죽은 자가 만명이 넘게 된다. 왕읍은 겨우 수천명을 데리고 낙양으로 도망친다. 이같이 하여 2만명으로 42만의 군대를 물리친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곤양 전투는 형세를 역전시켰고, 왕망이 의지하던 군대의 주력을 섬멸시켰다. 대학자 왕부지는 나중에 이렇게 평가했다: "한번의 전투로 종묘를 온전하게 지키고, 곧이어 천하의 광복을 가져오게 되었다." 광무제는 정말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러나, 곤양지전의 최대공신인 유수는 승진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된다. 원래 명망이 날로 높아가던 그의 형 유연이 경시제 유현의 질시와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마침 밖에서 군대를 이끌고 있던 유수는 스스로 세력이 고립됨을 느끼고, 비통함을 참고, 스스로 완성으로 가서 사죄한다. 그리고 인욕부중하며, 형의 장례도 지내지 않고, 오히려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던 음려화(陰麗華)와 거창한 혼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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