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Advertisement

에밀레종은‘성덕 대왕 신종’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이다. ‘에밀레’라고 운다고 하여 이르는 말이다. 봉덕사의 종이라고도 불리는 에밀레종은 신라가 망한 다음 천덕꾸러기가 됐다. 길가에 방치되었다 20세기 초가 돼서야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국내 범종들 가운데 소리가 으뜸이다.

30여년이나 신종 주조에 매달려 왔던 신라인들은 실패가 계속되자 신종의 소리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양으로 바치기로 했다. 불국토의 도래를 알리고 신라의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엄마 젖을 빨던 한 아이가 펄펄 끓는 쇳물 항아리에 바쳐졌다. 그리고 종은 완성됐다. 그런데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가 났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종 속에 깃든 것이다. 봉덕사종, 혹은 성덕대왕 신종이 에밀레종이 라 불리게 된 내력이다.

어떤이가 혹여 진짜인가 하고 성분 검사를 했더니 사람을 넣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비천상[]

비천(飛天)은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신을 일컫는 말로 천녀(天女)라고도 한다. 비천의 활동은 주로 부처가 설법하는 곳이나 보살이 머무르는 곳에 나타나 허공을 비회하면서 꽃을 뿌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공양한다고 한다.

전통문양을 공부하면서 비천을 처음 접했을 때 소시적 읽었던 전래동화 '에밀레종'을 떠올렸고 성덕대왕신종은 우리의 전통문양으로 제작된 것이리라 막연히 추측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전래동화처럼 혹은 설화처럼 전래된 에밀레종 이야기를 연상한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듯 하다.

그러나 비천상은 우리의 고유 전통예술이 아니다. 인도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된 것이다.

비천상만 이런 유래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해치(해태)도 그렇고 기린도 그렇고 상당수 전통문양에 사용되었던 대상들은 중국 혹은 인도 나아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만자문(卍)도 인도의 전통문양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면 (고유)전통이라는 단어를 쉽게 가져다 붙일 수 없을 듯 하다.

명문[]

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조산대부 겸 태자사의랑 한림랑인 김필오가 왕명을 받들어 지음.

무릇 지극한 道는 形象의 바깥을 포함하므로 보아도 그 根源을 볼 수가 없으며, 큰 소리는 天地 사이에 진동하므로 들어도 그 울림을 들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가설을 열어서 삼승의 심오한 가르침을 관찰하게 하고 신령스런 鐘을 내걸어서 일승의 원만한 소리를 깨닫게 한다.

대저 鐘이라고 하는 것은 인도에 상고해보면 카니시카왕에게서 증험할 수 있고, 중국에서 찾아보면 고연이 처음 만들었다. 텅 비어서 능히 울리되 그 반향이 다함이 없고, 무거워서 굴리기 어렵되 그 몸체가 주름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왕자의 으뜸가는 功績을 그 위에 새기니, 중생들이 괴로움을 떠나는 것도 그 속에 있다.

엎드려 생각컨대 聖德大王께서는 德은 山河처럼 드높았고 名聲은 해와 달처럼 높이 걸렸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여 풍속을 어루만지고 예절과 음악을 받들어 풍속을 관찰하셨다. 들에서는 근본이 되는 농사에 힘썼으며, 시장에서는 남용되는 물건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재물을 싫어하고 文才를 숭상하였다.

아들의 죽음에 傷心하지 않고 나이 많은 이의 訓戒에 마음을 두었다. 40여 년 동안 나라에 임하여 政事에 힘써서 한 해라도 전쟁으로 백성을 놀라게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방의 이웃나라와 멀고 먼 나라가 오로지 왕의 敎化를 사모하는 마음만 있었지 일찍이 전쟁을 엿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연(燕)나라와 진(秦)나라에서 사람을 잘 쓰고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교대로 霸業을 완수한 일을 가지고 어찌 나란히 말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돌아가실 날은 예측하기 어렵고 죽음은 쉽게 찾아온다. 돌아가신 지 지금까지 34년이다. 근래에 효성스런 후계자인 경덕대왕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 큰 王業을 이어 지켜 뭇 政事를 잘 보살폈으나,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어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거듭 아버지를 잃어 텅빈 대궐을 대할 때마다 슬픔이 더하였으니, 조상을 생각하는 情은 점점 슬퍼지고 冥福을 빌려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여졌다.

삼가 구리 12만 근을 희사하여 1丈이나 되는 종 1구를 주조하고자 하였으나, 그 뜻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문득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의 우리 聖君께서는 행실이 조상에 부합하고 그 뜻이 지극한 도리에 부합되어 빼어난 祥瑞로움이 과거보다 기이하며 아름다운 德은 현재의 으뜸이다. 온 거리의 용이 궁궐의 계단에 蔭德의 비를 뿌리고 온 하늘의 천둥이 대궐에 울렸다. 쌀이 열매달린 숲이 변방에 축축 늘어지고 연기가 아닌 색이 서울에 환히 빛났다. 이러한 祥瑞는 곧 태어나신 날과 政事에 임한 때에 응답한 것이다.

우러러 생각컨대 태후께서는 은혜로움이 땅처럼 평평하여 백성들을 어진 교화로 교화하시고 마음은 하늘처럼 맑아서 父子(경덕왕과 혜공왕)의 효성을 장려하셨다. 이는 아침에는 왕의 외숙의 어짐과 저녁에는 충신의 보필을 받아 말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행동에 허물이 있으리오.

이에 유언을 돌아보고 드디어 옛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유사(有司)에서 일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은 밑그림을 그렸다. 때는 신해년(771) 12월이었다.

이때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고 陰陽의 기운이 조화롭고 바람은 따뜻하고 하늘은 고요한데, 신성한 그릇(鍾)이 완성되었다. 형상은 산이 솟은 듯하고 소리는 龍의 소리 같았다.

위로는 유정천의 꼭대기까지 꿰뚫고 아래로는 귀허(歸墟)의 밑바닥까지 통하였다. 그것을 본 자는 기이하다고 칭송하고 그것을 들은 자는 福을 받았다.

원컨대 이 오묘한 인연으로 존엄한 英靈을 받들어 도와서 두루 들리는 맑은 소리를 듣고 말을 초월한 法緣에 올라감에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뛰어난 마음에 契合하고 일승의 참된 경계에 머물게 하며, 나아가 王孫들이 금으로 된 가지처럼 영원히 번성하고 나라의 王業이 철위산처럼 더욱 번창하며, 모든 중생들이 지혜의 바다에서 함께 파도치다가 같이 世俗을 벗어나서 아울러 깨달음의 길에 오르소서.

臣 필오는 졸렬하여 재주가 없음에도 감히 성스런 王命을 받들어 반고의 붓을 빌리고 육좌의 말에 따라 그 誓願하는 뜻을 서술하며 鐘에 銘을 기록하노라.

한림대 서생인 대나마 金符皖이 쓰다.

그 사(詞)에 이르되, 하늘에 天文이 걸리고 大地에 방위가 열렸으며, 산과 물이 나란히 자리잡고 천하가 나뉘어 뻗쳤다.

동해 가에 뭇 신선이 숨은 곳, 땅은 복숭아 골짜기에 머물고 경계는 해뜨는 곳에 닿았다. 이에 우리나라가 있어 합하여 한 고을이 되었다. 크고도 크도다 聖人의 德이여! 세상에 드물 만큼 더욱 새롭다. 오묘하고도 오묘하도다 맑은 교화여! 멀고 가까운 곳에서 능히 이르게 하였다. 은혜를 멀리까지 입게 하고 물건을 줌에 고루 젖게 하였다.

무성하도다 모든 자손이여 안락하도다 온갖 동포여. 수심어린 구름이 문득 슬퍼지니, 지혜의 태양에 봄이 없구나. 공경스럽고 효성스런 후손이 王業을 이어 기틀을 베풀었다.

風俗을 다스리되 옛 것에 따르니, 풍속을 옮아감에 어찌 어김이 있으랴. 매일 부친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항상 모친의 모습을 그리워하였다. 다시 복을 닦고자 하늘 鐘으로서 빌었다.

위대하도다 우리 태후시여! 왕성한 덕이 가볍지 아니하도다. 보배로운 祥瑞가 자주 출현하고 영험스런 符應이 매양 생겨났다. 임금이 어질매 하늘이 돕고 시절은 태평하고 나라는 평안하였다.

조상을 생각하기를 부지런히 하고 그 마음을 따라 誓願을 이루었다. 이에 幽冥을 돌아보고 이에 종을 베꼈다. 사람과 귀신이 힘을 도와 진기한 그릇이 모습을 이루었다.

능히 마귀를 항복시키고 물고기와 용을 구제할 만하다. 위엄이 동방에 떨치고 맑은 소리는 북쪽 봉우리에 울렸다.

듣는 이나 보는 이가 모두 믿음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씨뿌렸다. 원만하게 빈 속에 神技한 몸체가 바야흐르 聖人의 자취를 드러내었다. 영원히 큰 복이 되고 항상 莊重하리라.

한림랑인 급찬 김필오가 왕명을 받들어 짓고, 대조인 대나마 요단이 쓰다. 검교사 병부령 겸 전중령 사어부령 수성부령 감사천왕사부령이자

아울러

검교진지대왕사사인 상상 대각간 신 김옹 검교사 숙정대령 겸 수성부령 검교감은사사인 각간 신 김양상 부사 집사부의 시랑인 아찬 김체신 판관 우사록관사인 급찬 김충득 판관 급찬인 김충봉 판관 대나마인 김여잉유 녹사 나마인 김일진 녹사 나마인 김장간 녹사 대사인 김▨▨ 주종대박사 대나마 박종일 차박사 나마 박빈내 나마 박한미 대사 박부부 대력 6년 세차 신해(771) 12월 14일

聖德大王神鍾之銘[]

朝散大夫兼太子司議郞翰林郞金弼奧奉敎撰」

夫至道包含於形象之外視之不能見其原大音震動於天地之間聽之不能」
聞其響是故憑開假說觀三眞之奧載懸擧神鍾悟一乘之圓音夫其鍾也稽」
之佛土則驗在於罽膩尋之帝鄕則始制於鼓延空而能鳴其響不竭重爲難」
轉其體不褰所以王者元功克銘其上群生離苦亦在其中也伏惟」
聖德大王德共山河而幷峻名齊日月而高懸擧忠良而撫俗崇禮樂而觀風」
野務本農市無濫物時嫌金玉世尙文才不意子靈有心老誡四十餘年臨邦」
勤政一無干戈驚擾百姓所以四方隣國萬里歸賓唯有欽風之望未曾飛矢」
之窺燕秦用人齊晉替覇豈可幷輪雙轡而言矣然雙樹之期難測千秋之夜」
易長晏駕已來于今三十四也頃者 孝嗣景德大王在世之日繼守」
丕業監撫庶機早隔 慈規對星霜而起戀重違 嚴訓臨闕殿以」
增悲追遠之情轉悽益魂之心更切敬捨銅一十二萬斤欲鑄一丈鍾一口立」
志未成奄爲就世今 我聖君行合 祖宗意符至理殊祥異於千」
古令德冠於常時六街龍雲蔭灑於玉階九天雷鼓震響於金闕菓米之林離」
離乎外境非煙之色煥煥乎京師此卽報玆誕生之日應其臨政之時也仰惟」
太后恩若地平化黔黎於仁敎心如天鏡獎父子之孝誠是知朝於元舅之賢」
夕於忠臣之輔無言不擇何行有愆乃顧遺言遂成宿意爾其有司辦事工匠」
畵模歲次大淵月惟大呂是時日月替暉陰陽調氣風和天靜神器化成狀如」
岳立聲若龍音上徹於有頂之巓潛通於無底之下見之者稱奇聞之者受福」
願玆妙因奉翊 尊靈聽普聞之淸響登無說之法筵契三明之勝心居」
一乘之眞境乃至瓊萼之叢共金柯以永茂邦家之業將鐵圍而彌昌有情無」
識慧海同波咸出塵區幷昇覺路臣弼奧拙無才敢奉  聖詔貸班超」
之筆隨陸佐之言述其願旨銘記于鍾也翰林臺書生大奈麻金符皖書」
 

其詞曰

紫極懸象 黃輿啓方 山河鎭列 區宇分張 東海之上 衆仙所藏」
地居桃壑 界接扶桑 爰有我國 合爲一鄕 元元聖德 曠代彌新」
妙妙淸化 遐邇克臻 將恩被遠 與物霑均 茂矣千葉 安乎萬倫」
愁雲忽慘 慧日無春 恭恭孝嗣 繼業施機 治俗仍古 移風豈違」
日思嚴訓 常慕慈輝 更以脩福 天鍾爲祈 偉哉我后 盛德不輕」
寶瑞頻出 靈符每生 主賢天祐 時泰國平 追遠惟勤 隨心願成」
乃顧遺命 于斯寫鍾 人神獎力 珍器成容 能伏魔鬼 救之魚龍」
震威暘谷 淸韻朔峯 聞見俱信 芳緣允種 圓空神體 方顯聖蹤」
永是鴻福 恒恒轉重」

翰林郞 級飡金弼奧奉 詔撰」
待詔大奈麻姚湍書」

檢校使兵部令兼殿中令司馭府令」
修城府令監四天王寺府令幷檢」
校眞智大王寺使上相大角干臣」
金邕」
檢校使肅政臺令兼修城府令檢」
校感恩寺使角干臣金良相」
副使執事部侍郞阿飡金體信」
          判官右司祿館使級飡金忠得」
          判官級飡金    忠封」
          判官大奈麻金   如芿庾」
          錄事奈麻金   一珍」
          錄事奈麻金    張幹」
           錄事大舍金   ▨▨」

 大曆六年歲次辛亥十二月十四日鑄鍾大博士大奈麻朴從鎰」
              次博士奈麻朴賓奈」
           奈麻 朴韓味 大舍 朴負缶」

[]

紫極懸象 자극현상

  1. 黃輿啓方山河鎭 列區宇分張東海 황여계방산하진 열구우분장동해
  2. 之上衆仙所藏地 居桃壑界接扶桑 지상중선소장지 거도학계접부상
  3. 爰有我國合爲一 鄕元元聖德曠代 원유아국합위일 향원원성덕광대
  4. 彌新妙妙淸化遐 邇克臻將恩被遠 미신묘묘청화하 이극진장은피원
  5. 與物霑均茂矣千 葉安乎萬倫愁雲 여물점균무의천 엽안호만륜추운
  6. 忽慘慧日無春恭 恭孝嗣繼業施機 홀참혜일무춘공 공효사계업시기
  7. 治俗仍古移風豈 違日思嚴訓常慕 치속잉고이풍기 위일사엄훈상모
  8. 慈輝更以脩福天 鍾爲祈偉哉我后 자휘갱이수복천 종위기위재아후
  9. 盛德不輕寶瑞頻 出靈符每生主賢 성덕불경보서빈 출영부매생주견
  10. 天祐時泰國平追 遠惟勤隨心願成 천우시태국평추 원유근수심원성
  11. 乃顧遺命于斯寫 鍾人神獎力珍器 내고유명우기사 종인신장력진기
  12. 成容能伏魔鬼救 之魚龍震威暘谷 성용능복마귀구 지어룡진위양곡
  13. 淸韻朔峯聞見俱 信芳緣允種圓空 청운삭봉문견구 신방록윤종원공
  14. 神體方顯聖蹤永 是鴻福恒恒轉重 신체방현성종영 시홍복환환전중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