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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왈리드 2세

히삼(Hisham, 724-743)은 체포 고문 등의 강력한 통치로 중앙집권을 강화했으며, 그의 후계자 알-왈리드 2세(743-744)도 부도덕한 정치로 악명이 높아 이내 죽임을 당했다.

술탄이 독일 카이저 황제에게 선물로 보낸 요르단 암만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져 있는 734년 우마야드 칼리프 알왈리드 2세가 지은 궁전의 현관 입구도 페르가몬 박물관의 중요 전시물의 하나다. 요르단 수도인 암만의 남쪽 약 30km에 있었던 궁전 유적으로서, 734년 우마야드 칼리프 알 왈리드 2세(Umayyad caliph al-Walid II)에 의해 지어졌다. 그러나 그가 곧 암살되면서 궁전은 완공되지 못했다.

함마드 알 라위야는 시들의 내용과 연관된 전투·계보·민담 등의 전승들을 연구했다. 이러한 박식함으로 인해 그는 알 왈리드 2세의 총애를 받았으며 아마도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로부터도 환대받았던 듯하다.

아즈락 요새는 현지에서 생산되는 검은 돌(현무암)로 세워졌는데, ‘디오클레시안’의 기록이나 ‘맥시미안’의 제안의 의하면 테트라크 시대(AD300)부터 사용되었으며, 다른 라틴기록에 의하면 로마시대에는 아즈락이 다시아니스 혹은 바시아니스/ 바시(Basie)라고 불리웠던 것 같다.

정문 입구에 새겨진 아랍어 기록에는 1237년에 대대적인 재건축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마야드 시대에 이곳은 우마야드의 삼촌이며 칼리프인 ‘알 말리크’(Hisham bin Abd al-Malik, AD724~743)와의 법정다툼에서 분연히 충돌한 ‘알 왈리드 2세’의 피난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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