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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밀은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이다.

제6차 십자군 원정(1228년~1229년)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십자군 파병을 조건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종종 원정을 재촉하였지만, 프리드리히 2세가 이를 이행하려 하지 않자 그를 파문하였다. 1228년이 되어서야 프리드리히 2세는 파문된 채로 십자군을 일으켰다. 프리드리히2세는 교황으로부터 면죄부를 받기 위해 고민하던중 당시 이슬람의 맹주로서 이집트를 통치하던 술탄 알카밀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이집트 아유비드 왕조의 술탄 알 카밀은 내란으로 골치를 썩고 있던 상황인지라 프리드리히 2세의 교묘한 외교정책에 휘말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이양받았다. 그레고리오 9세는 교회로부터 파문된 채로 있던 프리드리히 2세가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된 것을 구실 삼아,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십자군을 일으켰지만 황제군에게 격퇴되어 1230년에 프리드리히 2세의 파문을 풀어주었다. 1239년에 맘루크 왕조가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면서 휴전은 유명무실해졌다. 1239년부터 1240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제후 등이 원정에 나섰지만, 역시 싸우지 않은 채 귀환하였다.

제7차 십자군 원정(1248년~1249년)은 알 카밀이 죽은 후, 1244년에 예루살렘이 이슬람교 측의 공격을 받아 함락, 2000명 남짓한 기독교도들이 학살되었다. 1248년에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원정을 하게 되지만, 아유비드 왕조의 살라딘 2세에 패배하고 포로가 되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석방되었다.

아이유브 왕조에서 온 사신은 시칠리아에 있는 이슬람 문화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는 술탄 알 카밀에게 아랍어로 된 서신을 보낸다. 유럽의 연대기 작가들에 의하면 성 프란체스코는 직접 술탄 알 카밀과 면담을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틀:십자군 중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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