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 [Arthur]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이다. 아더왕(King Arthur)은 엑스칼리버 전설로 유명한 영국 중세 시대(주후5∼6세기경)의 왕이다. 브리튼 지방을 소재로 한 일련의 중세 로맨스에서 원탁의 기사들을 다스리는 왕으로 나온다. 이러한 전설들이 어떻게, 어디에서(웨일스 지방인지 또는 브리튼어를 쓰는 켈트족이 거주한 북부 브리튼인지 확실하지 않음) 유래했는지, 그리고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서가 역사상의 인물로서 웨일스인들을 이끌어 템스 강 중류에서 전진해오는 서부 색슨족에게 저항했다는 가설은 2명의 초기 연대기작가인 길다스와 넨니우스의 주장을 합친 자료와 10세기 후반의 〈웨일스 연대기 Annales Cambriae〉에 근거를 두고 있다. 9세기 넨니우스의 〈브리튼 역사 Historia Britonum〉에 따르면, 아서는 색슨족에 저항해서 12번의 전쟁을 치렀으며 몬스 바도니쿠스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오는 아서에 대한 기록은 출전이 불확실하고 아마도 시(詩) 작품에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웨일스 연대기〉에는 몬스 바도니쿠스에서의 승리(516)와 '아서와 메드럿이 패배한' 캄란 전투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길다스의 〈브리튼 파멸과 정복 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6세기 중엽)에는 500년경에 몬스 바도니쿠스 전투가 있었다고는 하나 아서와는 결부시키지 않고 있다. R.G.콜링우드가 〈로마령 브리튼과 영국 민족의 정착 Roman Britain and the English Settlements〉(1936)에서 제기한 또다른 견해에 따르면, 아서는 영국 왕들을 받들어 로마군에서 훈련된 기마대를 지휘하는 직업군인으로서 색슨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전쟁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기 웨일스 문학은 아서를 신비와 경이의 왕으로 만들었다. 12세기의 산문 로맨스인 〈쿨후흐와 올루엔 Culhwch and Olwen〉에는 그를 다른 영웅들과 결부시키고 있는데, 아서를 우두머리로 하는 영웅군단의 개념이 필경 아서의 궁정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더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으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전설(원탁의 기사)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존재다. 아더왕과 그의 충직한 기사들, 그리고 기네비어와 수많은 아름다운 귀부인들. 위대한 마법사 멀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들이다. 아더왕은 잉글랜드의 왕으로서 색슨족과 야만인에 대항하며 나라를 구하고 수많은 무훈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따뜻한 자애심을 지닌 왕으로 아더는 영국을 넘어서 전유럽,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더는 남 웨일즈에 거주하고 있던 브리튼 족(켈트 족의 한 일파)의 군주로 그는 유더 펜드리건의 아들이었는데 펜드리건은 '왕들의 수장'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는 약 AD 500년 경의 인물로 여겨지는데 색슨족에게 열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고 영국을 수호했다고 여겨진다. 아더와 그의 나라는 더 이상 색슨족의 침입을 받지않았으며, 매우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조카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키고 542년에는 콘월(영국 남서부) 주의 켐런에서 커다란 전투가 일어나고 모드레드는 살해당하지만 아더 역시 중상을 입게 된다. 이후, 귀부인들에 의해 애발로니아(아발론) 섬으로 이송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더의 탄생과 그가 왕이 되기까지[편집 | 원본 편집]

브리튼의 왕 콘스탄스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모이네스와 유더, 그리고 펜드리건이 그들이었다. 콘스탄스가 죽고 모이네스가 왕위에 오르자 신하인 보티전이 반란을 일으키고 모이네스는 살해당한다. 이때 성에서 탈출한 펜드리건은 형인 유더를 찾아가 보티전에게 복수를 하고 왕위를 되찾는다. 펜드리건이 모이네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색슨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고 그의 형인 유더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유더는 고문인 멀린의 조언에 따라 전국의 모든 영주들을 모아 그들의 충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서 유더는 틴터디엘공(公) 골로이스의 아내인 이전느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구애하지만 이전느는 한마디로 거절한다. 이 사실을 안 골로이스가 아내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버리자 유더는 골로이스를 반역자로 결정하고 그를 포위한다. 이때 유더는 멀린의 도움으로 골로이스로 변신해 이전느와 밀애를 가지게 된다. 마침내 골로이스는 전사하고 이전느는 유더의 아들인 아더를 낳게 된다.

아더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액터 경에게 맡겨져 자라게 된다. 이때 아더의 아버지인 유더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유더의 다음 자리를 노렸지만 모두들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때 브라이스 주교가 자신의 교회 앞에서 검이 박힌 바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검을 뽑는 자가 왕이 될 것'(원전에는 '나는 엑스칼리버라고 일컫는데 왕의 아름다운 보물이다'라고 한다.) 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기사들과 야심가들이 이 검을 뽑아보려 애를 썼지만 그 누구도 바위에서 검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아더가 15세 되던 해, 아더는 종자로서 당시 양아버지인 액터 경과 젖 형제인 케이 경과 함께 마상경기에 따라 나서게 되었다. 케이 경은 매우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만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케이 경은 아더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 새로운 검을 가지고 오게 했다. 아더는 황급히 말을 몰아 집으로 갔지만 유감스럽게도 케이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상심해 발길을 돌리던 아더는 교회 앞 바위에 꽂힌 검을 떠올리고는 그곳으로 달려가 한 손에 쉽게 검을 뽑아낸다. 케이 경은 아더가 가져온 검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사람들은 그가 지닌 검이 바위에 박힌 검임을 상기하고 매우 놀라워 한다. 그러나 케이 경이 검을 소유한 것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케이 경에게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뒤 빼내어보라고 요구한다. 케이 경은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후, 검을 뽑으려 했지만 검은 뽑히지 않았다. 케이 경은 아더가 그 검을 가져왔음을 실토하고 사람들은 아더에게 검을 뽑아보게 한다. 아더가 검을 잡아들자 검은 쉽게 바위에서 빠져 나왔고, 아더는 신에 의해 선택된 왕으로 여겨지게 되고 곧 왕위에 올랐다.

아더 왕의 일대기[편집 | 원본 편집]

(아더왕의 일대기와 그가 이룬 모든 업적을 다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부득이 여기서는 그의 일대기에 대해 간략한 기록과 함께 그의 무용담을 몇 가지 곁들이도록 하겠다.)

아더왕이 왕위에 오르자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더왕은 이에 밴 왕과 보호트 왕의 원조와 멀린의 도움을 얻어 이들을 제압하고 왕위를 인정 받는다. 왕위를 인정 받은 아더왕은 원수인 색슨족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호엘 왕의 조력을 얻어낸 아더왕은 스스로 대군을 몰아 색슨족을 격퇴하고 배던 산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아더왕은 멀린의 조언에 따라 카말리드의 왕 라오데간의 딸인 기네비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서른 아홉 명의 기사만을 거느리고 카말리드로 향한다. 그때 라오데간은 아일랜드의 왕 라이엔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멀린은 아더왕과 일행들의 정체를 비밀에 붙이고 라오데간을 도와 라이엔스와 전투를 벌이게 한다. 아더왕은 매우 용감하게 싸워 거인인 콜랑을 죽이고 라이엔스의 군대를 물리친다. 라오데간이 그런 아더왕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자, 아더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기네비어를 왕비로 얻고싶다는 본심을 밝힌다. 라오데간은 이 말에 크게 기뻐하며, 아더왕과 기네비어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더왕은 스코트 족과 픽트 족을 정벌하고 다음해에 아일랜드와 아이슬랜드까지 정복했다. 그러자 주변의 여러 나라의 왕들이 아더왕에게 조공을 바쳐왔다. 이후, 노르웨이와 갈리아 지방까지 손에 넣은 아더왕은 고국으로 돌아와 카멜롯(시를레온)에 성을 짓고 그곳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올렸다. 로마의 루시우스 티베리우스의 침입마저 막아낸 아더왕은 자신의 왕국을 보다 건실하게 건설했다. 수많은 왕들이 아더왕에게 복속했으며, 수많은 기사들이 아더왕을 위해 카멜롯으로 모여들었다.

-배던 산(山)의 승리.

반역자들을 격퇴한 아더왕은 색슨족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아모리카의 호엘 왕의 조력을 얻은 아더왕은 드디어 색슨족과의 전투에 들어간다. 이때 아더왕은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성 처녀 마리아의 이름을 외치며 병사들을 독려하며 적진으로 뛰어든다. 아더왕은 300명이 넘는 색슨 인을 쓰러트리고 그들의 대부분을 패주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왕위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거인 콜랑과의 대결.

아더왕이 라오데간의 딸 기네비어와 결혼하기 위해 카말리드에 도착했을 때 라오데간은 아일랜드의 왕 라이엔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아더왕은 자신의 신분을 비밀에 붙이고 이 전투에 참여했다. 그때 아더왕이 이끄는 기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은 모두 승리하고 있었지만 라오데간은 적에게 포위가 되어 끌려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멀린의 도움으로 라오데간의 근처로 날아간 아더왕은 적들의 통로를 차단하고 라오데간을 구해내지만 곧 15피트(약 4m 가량)나 되는 거인 콜랑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아더왕은 전혀 두려움을 가지않고 콜랑과 맞서 싸운다. 한참의 결투 끝에 아더왕은 콜랑의 어깨에 맹타를 가한 뒤 그의 목을 친다. 콜랑의 머리는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아 거인의 어깨에 아직 붙어있었는데 아더왕은 이 거인을 자신의 말에 매달아 전장을 끌고 돌아다녔다. 이를 본 아일랜드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황급히 후퇴했다.

-미카엘 산(山)의 거인퇴치.

아더왕이 브르타뉴에 군대를 소집하고 동맹군을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시골사람이 아더왕에게 찾아와 성 미카엘 산 위에 거인이 살고 있는데 오랫동안 아이들을 납치해 잡아먹었으며, 최근에 브르타뉴 공작부인과 그녀의 시녀들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아더왕은 베드버 경과 케이 경만을 데리고 이 거인을 처치하기위해 미카엘 산을 오른다. 산 아래에 두 사람을 대기하게 해놓은 뒤 아더왕은 홀로 산을 오르다가 브르타뉴 공작부인이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분개한 아더왕은 산 위로 올라가 사람의 다리를 뜯어먹고 있는 거인에게 싸움을 걸었고 곧 둘 사이에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다. 거인이 곤봉으로 아더왕의 보관을 부서 버리자 아더왕은 칼로 거인의 배를 찔러 응수했고, 거인이 아더왕을 껴안고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아더왕은 단도를 꺼내어 거인을 계속 찔렀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며 아더왕과 거인은 산 아래까지 굴러 내려갔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베드버 경과 케이 경이 달려와 아더왕에게서 거인을 떼어놓았다. 두 기사가 아더왕을 잡고 있는 거인의 팔을 풀었을 때, 이미 거인은 숨이 끊어진 뒤였다. 아더왕은 거인의 머리를 베어내어 창 끝에 걸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망루에 걸게 했고 모든 백성들이 아더에게 감사했다. 아더는 거인이 강탈해놓은 약탈품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산 언덕 위에 성 미카엘을 기념하는 교회를 세웠다.

아더왕의 죽음[편집 | 원본 편집]

아더왕은 매우 자상한 왕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매우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다. 아더왕에게는 매우 훌륭한 기사들이 많았는데 그 중 란슬롯은 매우 뛰어난 기사였다. 용모는 물론 기품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용맹하여 단 한번도 결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더왕은 란슬롯을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란슬롯도 그런 아더왕을 존경했지만 한가지 아더왕에게 불경을 저지르고 있었다. 바로 왕비 기네비어와의 밀애였다. 란슬롯은 기네비어만을 자신의 여인으로 정해 그녀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기네비어 또한 그런 란슬롯을 총애하여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기네비어는 아더왕의 왕비였으며, 란슬롯은 아더왕의 신임을 받는 기사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반역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종종 밀애를 가져왔다. 이 사실을 안 아그라베인 경은 다른 기사들을 선동해 란슬롯과 기네비어를 몰아내려 했다. 사실 그 동안 기사들치고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사이를 눈치 못 채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이 일에 대해 그 어떤 관여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거웨인 경과 그의 형제들은 아그라베인 경의 말을 무시했지만 오직 모드레드 경만이 그에게 동조했다. 아그라베인 경은 아더왕에게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관계를 폭로했지만 아더왕은 믿지 않았다. 아그라베인 경은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모드레드 경과 함께 함정을 준비하지만 란슬롯에게 발각된다. 란슬롯은 아그라베인 경을 죽이고 모드레드에게는 부상을 입히고 도망친다. 그러나 이로써 란슬롯과 기네비어와의 관계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아더왕은 눈물을 삼키고 기네비어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한다. 란슬롯은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왕비를 구하기 위해 습격을 감행하는데 이 와중에 거웨인의 형제들을 그만 살해하고 만다.

형제들의 죽음에 분노한 거웨인은 아더왕에게 란슬롯을 칠 것을 건의하고 아더왕은 란슬롯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차마 자신의 주군을 공격하지 못하는 란슬롯은 프랑스로 도망간다. 아더왕은 모드레드에게 잠시 나라를 맡기고 거웨인과 함께 란슬롯을 뒤쫓는다. 그러나 란슬롯과의 전투에서 거웨인이 쓰러지고 전투는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 그때 본국에서는 모드레드의 반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 아더왕이 나라를 비우고 많은 기사들이 아더를 따라 전쟁터로 나서자 모드레드는 그 동안 꿈꿔오던 야망을 실행시키기로 한다. 모드레드는 아더왕이 죽었다는 가짜편지를 쓰게 한 후, 스스로 왕위에 올라 기네비어를 왕비로 맞이 하겠다고 선언한다. 기네비어는 런던 탑으로 피신하고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킨 사실이 아더왕에게도 전해진다. 놀란 아더왕은 황급히 귀국을 준비하여 도버로 향한다. 도버에서는 이미 모드레드가 이끄는 대군이 준비 중 이었지만 모드레드는 아더왕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했다. 아더왕은 모드레드를 후퇴시키고 상륙에 성공했지만 거웨인 경은 상처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거웨인은 유언에서 란슬롯을 불러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반역자를 처단하라고 한다. 아더왕은 거웨인의 말에 따라 란슬롯과 화해한 후, 그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모드레드와 휴전협상에 들어간다. 아더왕과 모드레드는 아더 왕 사후에 모드레드가 전 영국을 물려받는 것으로 협상에 합의 하지만 협상중인 천막에 들어온 독사에 물린 한 기사가 검을 빼어 드는 바람에 협상은 파기되고 양측은 다시 치열한 전투에 들어간다. 많은 기사들이 세상을 떠났고, 모드레드는 아더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아더왕도 심한 부상으로 생명이 위험해 지고 만다. 그때 아더왕의 곁에는 단 두 사람의 기사만이 남아 있었는데, 집사인 루칸 경과 베디비어 경이었다. 그러나 루칸 경도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아더왕은 베디비어 경에게 자신의 검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지도록 명령한다. 베디비어 경은 두 번이나 검을 던지는 것을 머뭇거리다가 아더왕의 호통을 듣고 난 후 검을 호수에 던진다. 그러자 호수에서 손이 나와 엑스칼리버를 쥐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아더왕은 호숫가로 다가가 귀부인들(모르간 르 페이, 호수의 요정 비비안, 북 갤리스의 왕비- 여기에 기네비어를 넣기도 한다.)이 탄 배에 실려 '신들의 영원한 젊음의 나라(켈트 신화의 티르 나 노이)'에 있다는 애발로니아(아발론)로 향한다. 그러나 아더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도 있다. 아더왕이 그 길로 글리스턴베리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숨을 거둔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1150년 헨리 2세의 명령으로 아더왕의 분묘가 발굴되었고, 이곳에서 유골과 검, 납으로 된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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