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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스 4세 [Agis IV, 기원전 263경~ 241]는 스파르타의 왕(BC 244~241 재위)이다. BC 3세기 후반에 아기스 4세와 클레오메네스 3세는 과감한 개혁으로 조국의 부흥을 기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세 때 부왕 에우다미다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의 영향을 받아, 토지와 부의 분배,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지우는 제도를 시정하려 했다. 그는 부채를 말소하고 스파르타 본토를 구획 안위로 나누어 그 가운데 4,500구획은 시민들에게 분배하자고 제안했다. 그당시 시민의 수는 700명으로 줄어든 상태였으므로 아기스는 많은 페리오이키(선거권이 없는 자유민)와 거류 외국인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주고 1만 5,000구획을 정해 나머지 페리오이키에게 나누어주려고 했다. 또한 아기스는 군사훈련에서도 리쿠르고스식(式)의 체제를 부활시키려 했다. 부유했던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자신들의 재산을 포기함으로써 아기스를 지지했고 삼촌 아게실라오스와 에포로스(왕의 권한을 견제할 의무를 지닌 행정관)였던 리산드로스도 그의 편을 들었다(243). 다른 왕 레오니다스 2세가 이끄는 부유층이 그의 제안을 반대하자 아기스는 레오니다스를 퇴위시켰다.

242년 에포로스들은 레오니다스를 복위시키려 했으나 아게실라오스가 이끄는 평의회에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토지 재분배 계획은 미루고 부채 말소 작업을 진행하던 중 당시 스파르타의 동맹이었던 시키온의 아라토스의 전쟁 원조 부탁을 받고 스파르타를 떠나게 되었다(기원전 241년).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지지자들은 아게실라오스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개혁이 지연된 데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며 레오니다스 왕은 용병의 지원을 받아 다시 권력을 쥐고 있는 상태였다. 아기스는 도망쳤으나 꾐에 빠져 피신처에서 나온 뒤 즉결 심판을 받고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처형되었다.


전 임
에우다미다스 2세
스파르타의 왕 에우리폰티드 왕조
후 임
에우다미다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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