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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폴리스 1세는 고대 스파르타의 아기어드 왕조의 21번째 왕이였다. 아게시폴리스는 기원전 394년 아직 어릴 때 그의 아버지 파우사니아스를 계승하였고 14년간 다스렸다. 파우사니아스가 죽을 때 아게시폴리스와 그의 형제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였던 아리스토데무스의 보호아래 있었다. 아게시폴리스가 왕관을 받았을 때 테베, 아테네, 코린토스 그리고 아르고스의 반 스파르타 동맹이 부분적으로 페르시아 샤트랍(총독) 티트라우스테스의 간계에 의해 야기되었다. 그의 동료 아게실라우스를 아시아에서 다시 부를 필요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의 치세의 첫 군사적인 작전은 코린토스로 원정하는 것이였다. 그곳에서 동맹군은 뭉쳤다.

스파르타 군대는 아리스토데무스에 의해 시험되었다. 그리고 연합군에 승리하였다. 기원전 390년 에게시폴리스는 이제 어른이되어 아르고스 공격에 대해 군대의 지휘자로 신뢰를 받았다. 아르고스가 그들의 진군을 저지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무시되자 올림푸스와 델파이의 신들의 승인을 얻고 종교적인 휴전의 구실로 그는 기원전 393년 아게실라우스가 했던 것보다 더욱 심한 파괴를 집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에서 그를 단념시키려는 희생자들의 의지를 경험하면서 원정은 결실을 얻지 못하고 전리품만을 얻었다.

기원전 385년 스파르타인들은 약간의 천박한 구실을 지니고 만티네이아에 원정을 보냈다. 만티네이아에서 아게시폴리스는 아게실라우스에의해 사임되었던 지휘를 수행하였다. 이 원정에서 스파르타인들은 테베의 도움을 받았으며 만티네아 전투에서 테베 장군 아파미논다스펠로피다스는 겨우 목숨만 건졌다.

아게시폴리스는 오피스 강의 도시로 돌려서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도시벽의 아래 부분의 낮은 땅을 물에 잠기게 하였다. 지하실들은 굽지 않은 벽돌로 지어져 물을 견지지 못하였다. 벽은 곧 무너지기 시작하고 만티네아인들은 항복하여야 했다. 그들은 주민들이 네곳의 작은 마을에 이산되도록하는 조건으로 생존이 허락되었다. 그들중의 하나는 수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민주 지도자들은 추방이 허여되었다.

기원전 382년 대사관은 아칸투스와 아폴로니아의 도시에서 스파르타로 옮겼다. 그리고 찰키디아 연맹에 대항하는 도움을 요구하였다. 스파르타는 그것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기원전 381년의 2차원정에서 텔레우티아스의 패배와 사망 후에 아게시폴리스는 지휘를 맡았다. 그는 기원전 381는 출정하였지만 380년봄이 될 때까지 작전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후 그는 대단한 열의로 활약하였고 폭풍과 같이 토로니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공중에 그는 열병에 걸렸다. 그것이 몇일만에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팔렌 반도, 아피티스의 마을에서 죽었다. 그의 시신은 밀랍에 담겨서 매장을 위해 스파르타로 이송되었다.

아게시폴리스는 아게실라우스에 의해 계획된 외국 정벌의 야망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실은 그의 왕자에의해 깊이 후외되었다. 그은 그에 대한 신실한 경의를 지닌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형제 클레옴브로투스 1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플카틀레지는 아게실라우스의 슬픔이 부분적으로 단련된 범죄의 공범의 손실에 인한 것임을 암시해준다.

전 임
파우사니아스
스파르타의 왕 아기어드 왕조
후 임
클레옴브로투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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