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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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왕 (神武王~839)은 신라의 제45대 왕(839 재위)이였다. 이름은 김우징(金祐徵). 할아버지는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추봉된 원성왕의 아들 예영(禮英)이며, 아버지는 성덕 대왕(成德大王)으로 봉해진 균정(均貞), 제43대 희강왕의 종제(從弟)이다. 어머니는 진교부인(眞矯夫人) 박씨이고, 비는 진종부인이였다. 43대 희강왕과 45대 신무왕은 서로 사촌인데, 신무왕의 재상인 김양, 그리고 희강왕의 신하인 김흔 이 두 사람도 서로 사촌간이다. 각자 다른 왕의 군대를 끌고 839년에 대구에서 만나서 정초부터 둘이서 죽자꾸나고 싸웠다.

신무왕(神武王) 원년 기미(839) 김양(金陽)이 김명(金明)을 토벌하여 죽이고, 예징 등이 이미 궁중을 숙청하고, 예절을 갖추어 그를 맞이하고, 왕손 우징(祐徵)을 세웠다. 그때 민애왕을 옹립했던 이홍은 처자를 버리고 산속으로 도주했는데, 신무왕이 병사를 풀어 그를 잡아 죽였다. 그 뒤로 신무왕은 곧잘 이홍이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신무왕은 궁복을 감의군사로 임명하고, 2000호를 식읍으로 봉해 주었다.

경주 감은사에서 뒤 돌아 다리를 건너 감포 쪽으로 조금 가면 신무왕이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사적 159호 이견대가 나온다. 장보고는 엄연히 신라에서 청해진 대사로 임명되고 신무왕의 즉위에도 일정부분 역할을 한 명백한 신라장수이다.

836년(희강왕 1) 왕위계승분쟁에 패배한 김우징(金祐徵;신무왕)이 청해진으로 피란해 와 그에게 의탁하였다. 837년(희강왕 3년)에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신무왕)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그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839년 민애왕을 죽이고 우징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장보고는 정년에게 군사 5천명을 주어 민애왕을 축출하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옹립하였다. 하지만, 신무왕이 6개 월 만에 죽고 문성왕이 즉위하자 진해장군이 되었고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매물사를 보내어 삼각무역을 하였다. 딸을 왕의 차비로 보내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취소가 되었다. 장보고도 문성왕 3년(846)에 염장(閻長)에게 피살된다.

일본서기(日本書紀) 신무왕기(神武王紀)에는 신무왕(神武王)이 B.C 660년에 일본국을 건국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숭신왕기(崇神王紀)에는 숭신왕 때부터 나라가 시작되었고 신무왕은 조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백제에서는 약해져가는 천황가를 일으켜 세우려고 신무왕을 왜 열도에 파견하여 천황위에 오르도록 했다. 신무왕은 대군단을 편성 , 정벌에 나섰다. 현지의 군대를 합하여 대군단을 편성하고 정벌에 나섰다. 신무왕의 대군단은 동부세력을 하나하나 혁파해나갔다. 토협·안예·남속·하내·기이 등 작은 나라들이 차례로 병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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