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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왕(聖德王,Seongdeok of Silla ?~737년, 재위: 702년~737년)은 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이름은 흥광(興光). 초명 천중(天中), 원래의 이름은 융기(隆基)였지만, 당의 현종과 이름이 같아서 712년에 당의 칙명에 의해서 개명을 한다. 당서에는 김 지성이라 하였다. 신문왕의 둘쩨 아들이며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효소왕이 죽었을 때 아들이 없었으므로 즉위하였다.

비는 승부령(乘府令)이던 소판(蘇判) 김원태(金元太)의 딸인 성정 왕후(成貞王后, 혹은 嚴貞王后)로 원래 배소 부인으로 불리었고, 후에는 엄정 왕후라 불리기도 했다. 그녀는 성덕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시집와서, 성덕왕 3년(704년) 5월에 정식으로 왕비가 되었다.

신룡 2년 병오(706)에 흉년이 들어서 백성이 매우 굶주렸다. 그 이듬해인 정미 정월 초하루부터 7월30일까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곡식을 주었는데, 한 사람에게 1일분을 3되로 하였다. 성덕왕은 빈부의 격차를 떠나 모든 백성을 사랑하고자 하였다. 그래서인지, 성덕왕 시절에는 죄수들을 방면하는 일이 유난히도 잦았다. 당나라와 활발한 외교 관계를 펼쳤으며 정전을 실시하였다.

성덕왕 15년에 성정 왕후를 왕궁에서 내보내고,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 소덕 왕후(炤德王后)를 계비로 맞이하였다.

천덕구러기처럼 불렀던 철쭉꽃을 삼국유사에서 신라 성덕왕때 순정공의 수로 부인은 신라 제일의 미인으로 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따라 나선 부인이 천길 절벽에 매달린 아름다운 철쭉을 보고, 따 달라고 하자, 소를 몰고 지나가던 이가 헌화가를 부른다. 신라 경덕왕은 부왕인 성덕왕의 위업을 추앙하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들여 이 대종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아들 혜공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혜공왕 7년(771)에 이 종을 완성한다.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

경상북도 월성군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이다.

하동의 명물 삼성궁 화계장터를 넘어 지리산 쪽으로 오르다보면 쌍계사가 나타난다.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남록에 위치해 있다. 서기 723년(신라 성덕왕 22년)에 삼법, 대비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 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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