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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 태자 (聖徳太子, 573년621년) 또는 우마야도 태자(厩戸皇子)는 일본 아스카 시대의 황족이자 정치가였다. 요메이 천황의 제2황자로 어머니는 긴메이 천황의 딸인 아나호베노 하시히토노 황녀(穴穂部間人皇女)로 추측된다.틀:출처

전설에 의하면, 우마야도(厩戸 : 마굿간)란 본명은 마굿간 앞에서 태어난 데서 유래했다고 하나, 탄생지 근처의 우마야토(厩戸) 지방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도요토미미/도요사토미미(豊聡耳), 가미쓰미야아우(上宮王)이라는 별명도 있다. 《고지키》에서는 상궁지구호풍총이명(上宮之厩戸豊聡耳命)라고 표기하였으며, 《니혼쇼키》에서는 풍이총성덕(豊耳聡聖徳, 풍총이법대왕(豊聡耳法大王), 법주왕(法主王)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스이코 여왕은 쇼토쿠 태자의 고모이고 스이코 여왕은 후계자로 쇼토쿠를 지명했습니다. 이 쇼토쿠 태자(573~621)가 활동한 시기가 바로 아스카 시대입니다.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의 시대를 정점으로 야마토 분지 즉 아스카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한 문화를 아스카 문화라고 한다. 아스카 시대를 연 핵심 인물은 백제계 이주민의 외손인 쇼토쿠 태자였다. 백제의 혜총(惠聰)은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으며, 태자가 백제 성왕을 많이 닮았다고 하잖아. 그래서 위덕왕과 아좌 태자가 성왕이 쇼토쿠 태자로 환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쇼토쿠 태자를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서기 597년, 백제의 위덕왕은 아좌태자를 왜 왕실로 보냈고, 그림 솜씨가 뛰어난 아좌태자는 쇼토쿠와 두 왕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595년에는 고구려의 혜자와 백제의 혜총이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어 불교와 학문을 가르쳤으며, 관륵담징 스님 또한 쇼토쿠 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쇼토쿠태자는 불교를 기조로 한 정치를 했다고 하네요.

쇼토쿠 태자는 중국의 정치 및 종교 도입에 관심을 가졌다. 《니혼쇼키》에 따르면 쇼토쿠는 유학에 영감을 얻어 603년 관위 12계를 세우고 헌법 17조를 반포하는 등 그의 치세에 중앙 집권 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스이코 천황에게 《승만경》을 강의하고 《법화경》과 《유마경》 등의 주석서를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또 세쓰 지방(오늘날의 오사카)에 시텐노지 라는 사원을 세우게 하였는데 쇼토쿠란 시호도 607년 야마토 지방에 스이코 천황과 공동으로 설립한 호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라현에 있는 호류지는 7세기 초반 불교를 일본에 도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쇼토쿠 태자(574~622)의 명령으로 건립되었다. 670년 절의 일부가 화재로 파괴되었지만 곧 대규모로 경내를 재건했다.

일화[]

605년수나라 양제가 보낸 국서에 답하여 607년 오노노 이모코 일행을 보내었다. 답서에는 "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지는 곳의 천자에게 보내니 별일 없는가?"라는 표현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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