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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불교는 11세기 중엽이후에 각 교파의 형성시기에 진입하였으며, 잇달아 영마파(寧瑪-닝마), 갈당파(갈當-까땅), 살영(薩迎-싸잉), 갈거파(갈擧-까쥐), 격로파(格魯-꺼루), 희해파(希解-시졔), 각우파(覺宇-줴위), 갈낭파(覺囊-줴낭), 곽찰파(郭紮-꿔짜), 하로파(夏魯-샤루) 등의 교파(敎派)가 출현하였다. 뒤의 5개파는 기댈 만할 정치세력이 없고 세력이 미약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타 교파에 흡수되거나 압박을 받아 기타 교파로 개종하여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영향력이 비교적 큰 5개 교파는 다음과 같다.

영마파(寧瑪派 닝마파, 홍교紅敎)편집

영마파는 11세기에 형성되었으며, 서장불교에서 가장 일찍 탄생된 교파의 하나이다. 이 교파는 서장의 고유종교인 분교의 색채를 다량 흡수하여 보유하고 있으며, 고대에 낭달마(朗達磨)가 불교를 멸절시켰을 때 불교도가 은닉한 경전의 발굴을 중시하고, 아울러 자신들이 전파하는 불교는 8세기 토번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매우 전통이 오래 되었다고 간주하여 영마(寧瑪, 서장어 의미는 고古, 구舊)라고 하였다. 게다가 이 교파의 승려는 홍색의 승모 만을 사용하므로 '홍교(紅敎)'라고도 한다. 홍교는 밀종수행을 위주로 하며, 그 사상은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 중원 선종의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는 설법과 유사하다. 오늘날, 홍교는 중국의 서장지역에 전파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 부탄, 네팔, 벨기에, 그리스, 프랑스, 미국에도 종적이 있다.

갈당파(까땅파)편집

갈당파는 1056년 창건되었다. 서장어 '갈'은 '부처의 말씀'을 가리키며, '당(當)'은 '교수(敎授)'를 가리킨다. '갈當(까땅)'의 의미는 부처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범인凡人이 불도를 접수하도록 지도한다는 의미이다. 이 교파는 현종(顯宗)의 수행 위주이며, 먼저 현종을 배우고 후에 밀종(密宗)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교법敎法의 전파가 매우 광범위하여 서장불교의 각 교파는 모두 그 영향을 받았다. 15세기 격로파(格魯派)가 흥기한 다음에, 원래의 갈당파 승려와 사원은 모두 격로파로 개종하여, 갈당파는 이로부터 서장에서 사라졌다.

살가파(薩迦派사쟈파, 화교花敎)편집

살가파는 1073년에 창건. 이 교파의 주사主寺인 살가사(薩迦寺)가 있는 땅이 회백색灰白色을 띠고 있으므로 살가(薩迦 서장어 의미는 백도白土)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교파의 사원을 둘러싼 담에 문수(文殊)와 관음(觀音) 및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을 상징하는 홍(紅), 백(白), 흑(黑)의 삼색(三色)의 문양을 칠하므로 '화교(花敎)'라고도 한다.

화교가 교파의 체계를 형성하고, 종교적인 영향을 확대시키며, 봉건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역사상 저명한 '살가오조(薩迦五祖)'가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살가사조(薩迦四祖)인 살반공갈견찬(薩班貢갈堅贊)은 1247년 원元 통치자의 부름으로 양주(凉州)로 가서 서장의 귀속문제를 협의하였다. 그 후에 살반(薩班)은 서장의 각 봉건세력을 연락하여 몽고에 귀순시켰다. 살반(薩班)이 사망한 뒤에 살가오조(薩迦五祖) 파스파(八思巴)는 원元 중앙정부의 고급관리가 되어, 원나라 황제로부터 국사(國師), 제사(帝師), 대법왕(大寶法王)에 봉해졌으며, 살가파도 이로 말미암아 원대에 서장통치의 대표자가 되었다. 명대明代 살가파 고승인 공갈찰서(貢갈紮西)가 남경南京으로 가서 영락제(永樂帝)를 알현하고 명대(明代)의 삼대법왕(三大法王)의 하나인 '대승법왕(大乘法王)'에 책봉되었다.

갈거파(갈擧派,까쥐파, 백교白敎)편집

갈거파는 11세기에 창시되었으며, 밀종의 학습을 중시하지만, 밀종학습은 또한 반드시 말로 전해주는 구이상전(口耳相傳)을 통해야 하므로, 갈거(갈擧-서장어로 '구전口傳'이라는 의미)라고 이름하였다. 이 교파의 창시자 마이파(瑪爾巴-마얼빠)와 미랍일파(米拉日巴-미라르빠)는 수법시(修法時)에 모두 백색(白色)의 승복을 입었으므로 '백교(白敎)'라고도 한다. 백교는 최초에 향색갈거(香巴갈擧-샹빠까쥐)와 탑포갈거(塔布갈擧-타뿌까쥐)로 나뉘어 있었다. 샹빠까쥐파는 14-15세기에 쇠락하여, 현재 까쥐파라고 하는 경우에는 보통 타뿌까쥐파를 가리킨다. 타뿌까쥐파는 세력이 강대하고 지파가 가장 많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직접 서장지방에서 정권을 잡고 있지는 않지만, 한 지방을 독점하는 봉건세력의 하나이다.

격로파(格魯派,꺼루파, 황교黃敎)편집

격로파는 1409년에 창건되었으며, 15세기 서장불교사상 저명한 종교개혁가인 쫑카파가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서장불교 가운데 가장 늦게 형성된 교파의 하나이다. 쫑카파는 서장의 말죽정권(말竹政權)이 살가정권을 대체한 시기에 탄생하였으며, 이 시기는 상층의 승려들이 직접 정치권력의 투쟁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이 날로 부패하여 사회적으로 민심을 점차로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여, 쫑카파는 계율을 중시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도처에서 불경을 설명하고 설법하며, 저서를 통해 학설을 세워서 승려가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 적극적으로 서장불교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1409년 장력(藏曆) 정월(正月)에 그는 라싸의 대소사(大昭寺)에서 기원대법회를 발기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지속되는 전소대법회(傳昭大法會)이다. 법회 후에 쫑카파는 저명한 감단사甘丹寺를 건립하고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는 격로파(格魯派, 격로格魯는 서장어로 계율에 뛰어나다는 의미)를 창립하였다. 쫑카파 및 그 추종자들이 황색(黃色)의 승모를 사용하였으므로,'황교(黃敎)'라고도 한다.

황교가 창립된 뒤에 계속하여 철방사(哲蚌寺), 색랍사(色拉寺), 찰습륜포사(紮什倫布寺), 탑이사(塔爾寺), 랍복능사(拉卜楞寺)를 건립하였으며, 이 사원들은 감단사와 함께 격로파의 육대사원(六大寺院)이라 불리워진다. 이 밖에 황교는 또한 달라이와 판첸이라는 양대 활불의 전세계통을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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