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徐庶, ? ~ 234년[1])는 중국 후한 말 ~ 위(魏)의 정치가로, 자는 원직(元直)이며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사람이다. 본래 이름은 서복(徐福)이었다. 그의 집안은 단가(單家)였다. 소설가들이 《위략》에 보이는 “단가單家”라는 기록을 “단씨의 가문”이란 뜻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단가單家”의 본래 의미는 “미미한 집안”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문장의 뜻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청나라 시절에 처음으로 《삼국지》의 주석들을 종합했던 양장거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평론하고 있다. 예전에 명나라 소설가가 서서徐庶가 은거했을 당시의 성명을 『단복單福』이라고 하였다. 소설가들이 “단單”자를 (서서의) 성이라고 한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이 깊어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 단복, 또는 선복이라고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격검의 명수였으나, 친구의 복수를 위해 누군가를 살해한 이 후 이름을 서(庶)에서 복(福)으로 개명한다. 그 후로 이름을 단복으로 바꾸고 유량하다 형주땅 신야에서 유비를 만난다. 서서는 직접 인마를 조련하고 군사들에게 진법을 가르쳤다.

조조의 사촌동생 조인이 쳐들어왔을 때 그 동안 익힌 진법을 구사하여 팔문금쇄진을 깨어 쳐부수자 조조는 정욱의 계책을 빌어 서서의 어머니를 인질로 삼고 자기편으로 만든다. 서서는 유비를 떠나면서 융중의 제갈량을 추천해주고 떠났다. 그러나 서서의 어머니는 충을 모르는 아들에게 실망하여 자살한다. 그 이후로 서서는 조조를 위해 아무런 계책을 내어놓지 않았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방통이 와서 연환계로 배를 서로 묶을 것을 권했을 때는 그들이 화공 계획을 간파하고 방통의 꾀를 빌려 농서 지방이 술렁거린다는 유언을 퍼뜨리고 스스로 그곳의 수비를 자원하여 떠나 희생을 모면하였다. 조조는 서서를 위나라에 오게 하는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정사에서는 서서가 위나라에서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으므로 그가 조조에게 계책을 내지 않았다는 설에 신빙성을 약하게한다.

1560년경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한 항해자가 데려온 3명의 브라질 원주민을 만나 “족장의 특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족장인 남자는 “전쟁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회의에는 지침보다는 '넛지(nudge)'가 필요합니다. 미주리-콜럼비아 대학의 알렌 블루돈과 그의 연구팀은 '서서 하는 회의'의 효과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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