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Advertisement

서복(徐福)은 문헌상으로 서복 또는 서불(徐巿)의 이름으로 나타난다.('徐巿'는 '서불'이라고 읽는다. 이하 서불) 서불은 기원전 255년 제나라에서 태어서 진나라의 방사(方士)로 일했다. 중국 진(秦)나라 때의 사람(?~?). 진시황의 명으로 동남(童男), 동녀(童女) 3천 명을 데리고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러 바다 끝 신산(神山)으로 배를 타고 떠났으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서복은 '서불(徐市)'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산둥반도의 제나라 출신 도사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을 둘러먹은 대단한 사기꾼이다. 불로장생 신선사상에 매료된 진시황에게 불로초 탐사를 제안했다. "바다 가운데 봉래, 방장, 영주 세 신산이 있는데, 그 곳의 신선들이 먹는 불로초를 구해오겠습니다" (수은을 불로장생약이라고 먹고 있던 시황제는 눈이 번쩍했다. 대성측경?)라고 하자 쾌히 허락하고 동남동녀 3천과 함께 서복을 바다 건너로 보냈다.

이는 사마천(BC145~BC86)의 '사기' 기록으로 서복의 불로초 사기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기원전 219년 산둥 반도 동쪽 끝 천진두 낭야대 바닷가에서 드디어 출항했다. 서복의 유언에 따라 후손들은 사기극 피해를 볼까봐 다른 지역으로 이사 또는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이를 끝으로 '사기' 기록에서 사라진 서복은 어디로 갔을까.

한·일 설화를 살펴보면 서복 일행 선단은 한반도의 서해안을 돌아 남해군 상주면 두모포에 상륙하여 금산에 올라 바위에 서불과차(서복이 지나가다)를 새긴 후 부산·제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이를 뒷받침 해주는 설화가 큐슈지역의 사가 후쿠오카 등 십수 곳에 전한다. 일본에서는 의학·학문·농경의 신 등으로 모셔지고 있다. 서복 일행은 우리에게도 철기의 선진문화를 전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당시 뱃길에서 험난한 명량 해협을 지나 마로 해협도 꼭 지나야한다. 그 끝단에 있는 백포만 각처에 국제항구들이 발달해 있었다. 군곡리 중국관련 유물들로 보아 장거리 항해시 필요한 물·식량 등을 공급받고 복골로 무사항해를 점쳤을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겠다.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