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함(斯多含, 547년 ~ 564년)은 신라의 화랑이였다. 성은 김이며 내물 마립간의 아들 미사흔의 6대손이다. 그는 진흥왕 때의 화랑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 급찬 구리지(仇梨知)와 금진낭주의 아들로, 격검에 능했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본래 고귀한 가문의 후예로서, 풍채가 미끈하게 빼어났으며, 뜻과 기개가 곧았다.

대가야 정복의 선봉에 선 제5대 풍월주 이사부대가야를 정복할 때 사다함(斯多含)이라는 소년 장군의 활약이 숨어 있었다. 사다함을 전투에 보내려고 전쟁을 한것은 아니였다고 본다. 이사부는 사다함을 기용하여 함께 출전했다. 그러나 사다함이 거느린 소년 부대를 본 가야국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여자의 배신으로 사내가 죽음에 이른 경우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나 화랑 김사다함(金斯多含)의 죽음도 그러하다. 나를 먼저 유혹한 여자는 한 번 혼인했다가 대궐에서 쫓겨난 미실궁주(美室宮主)였다.

사다함이 미실에게 남긴 것은 사다함이 이끄는 화랑의 상징인 매화와 서신 그리고 가야의 책력이였다.

전 임
이화랑
제5대 풍월주
후 임
세종 (풍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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