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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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랑((秘宝郞 생몰년대:549년 - ?, 풍월주 582년 - 585년) 은 신라의 제9대 풍월주였다. 위화랑의 딸 옥진궁주는 법흥왕과의 사이에서 비대 전군(比臺殿君)을 낳았는데, 비대는 미진부공의 친동생인 실보 낭주(實宝娘主)와 맺어져 제 9대 풍월주 비보랑 (秘宝郞)을 낳았다

문노의 부제로 있던 비보랑이 윤궁을 찾아와 문노를 계부로 맞이할 것을 권했다. 비보랑 역시 윤궁과 종형제간이었는데, 문노를 높이 평가하여 그녀와 맺어 주려 했던 것이다.

공은 노리부공(弩里夫公)의 딸 세진 낭주(細珍娘主)를 아내로 맞아 아들 세호랑(細好郞)을 낳았고 딸 세미(細美)와 세신(細新)을 낳았는데, (세진낭주는) 병으로 죽었다. 다시 진흥대왕의 딸 덕명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덕명 공주의 어머니는 곧 가야국 월화공주이다. 다섯 아들과 세 딸을 낳았는데 아들은 봉부·보부·석부·보주·진주·이고 딸은 홍주·녹주·명주였고, 서자는 유오랑·유매·가기·수동 등으로 모두 귀하게 영달했고 명성이 있었다.

유오랑은 공의 첩 유지의 소생이다. 유지는 검술을 잘했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난도(亂徒)를 많이 모아 소요를 일으켰다. 조정에서 군사를 모아 잡으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공은 열여덟의 나이에 그 굴을 찾아가 생포했다. 아마 유지가 미모에다 뜻이 높아, 공의 높은 풍모를 보고 스스로 항복했을 것이다. 공은 그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겨 모두 풀어 주었다. 유지는 홀로 가지 않고 말하기를 "다만 그대를 좇아 죽기를 원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살기를 원치 않는다" 했다. 마침내 첩이 되었다. 유오랑은 어머니의 풍모를 갖추어 용모가 맑고 빼어났고 …기…가 있었다. 18살의 나이에 지명법사(智明法師)를 따라 진(陳)에 들어가 …을 구하고 많은 책을 가지고 와서 후진 사문들을 가르쳤으니, 그 공 또한 크다.

전 임
문노
제9대 풍월주
582년 - 585년
후 임
미생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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