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비단은 누에실로 짠 고귀하고 화려한 견직물(絹織物). 비단 직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의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왕실에서 짠 비단을 어의(御衣)로 사용하였으며, 개선장군에게 금포(錦袍)를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한나라 때 한금(漢錦)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西域)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비단은 금(金)값에 맞먹는다고 해서 글자도 금(錦)으로 쓰게 되었다고 전한다. 소지왕 때 방인(邦人)도 금수를 입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비단의 역사는 역사는 신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금직기술이 발전하지 못하여 비싼 값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는데 1945년 광복 이후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유신의누이도 언니인 보희한테 비단한필을 받고 꿈을 샀다고 하고 고려시대도 보면 언니의꿈을 비단한필에 샀다고 하는데 역사 서적인 "사기"에 보면, 당시에 비단 한필의 가격은 6백전, 질 좋은 비단 은 8백전에 거래 되었으며, 이것은 당시 물가로 비단 한필에 "백미 6석(720kg)'에 해당 하였으며, 이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은 극소수에 불과 하였다고 알려주고 있으며 백미1석은 120kg에 해당 하였으며 돈으로는 1백전, 백미 60kg는 50전, 백미 30kg는 25전에 해당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옛 조상들은, 대다수의 평민들은 흰색 보다는 "누런색에 가까운 무명이나 삼베로 만든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비단 한필의 가격이 일반적인 백성들은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고가였기 때문에, 감히 비단을 구하여 즐겨 입지 못하고 "무명이나 삼베로 만든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