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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융(扶餘隆, 615~682)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다. 삼국 말기의 대표적인 경계인이다. 부여융은 의자왕의 셋째 아들이며 644년(의자왕 4년) 태자로 책봉되었다.

661년 김춘추가 암살당하고 그 뒤를 아들 법민이 이었다. 당은 백제 땅에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보내 웅진도독으로 삼고 취리산에서 부여융과 문무왕이 맹약을 맺게 했다. 취리산의 맹약이 그것이다.

661년 부여풍장의 백제 부흥 전선에서는, 의자대왕의 넷째부인의 아들 부여융이 660년에 당나라로 압송되었다가 당나라 병참장수가 되어 돌아 왔다.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를 몰아내는 독립전쟁의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식민지 총독으로 부임한 부여융의 등장에 의해 백제 부흥군은 내부 분열로 인하여 붕괴되고 만다 이후 영원히 역사에서 백제는 사라졌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의 딸은 당나라 황실과 결혼하여 백제유민들을 노예적인 삶에서 구해 주었다.

부여융 묘지석은 1920년 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되었다. 1921년 중국 금석학자인 나진옥에 의해 판독조사가 이루어졌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660)의 증손녀인 부여태비(扶餘太妃)의 묘지명이 중국 시안(西安)에서 발견, 의자왕 후손들의 가계도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