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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는 전국시대 진(秦)의 장군이다. 말단 병졸부터 시작하여 군의 통수권자인 대량조가 되었고, 무안군으로 책봉되었다. 전국 4대명장 중 하나로 꼽히며, 소양왕의 장수들 중 으뜸으로 꼽힌다. 진(秦)나라의 장수로 무안군(武安君)으로 불리며 용병술에 매우 능했다. 백기는 소왕 때에 벼슬이 대량조까지 올랐으며,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토를 확장시켰다.

소왕 14년, 한나라와 위나라 연합군을 공격하여 24만명을 참수하고 위나라 장수인 공손희를 포로로 잡았으며 5개 성을 함락하였다. 한나라와 위나라를 쳐부수고, 위나라 대장 사무(師武)를 죽이고 많은 성을 빼앗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기원전 266년 진 (秦)나라는 대장군 백기(白起)에게 100만 대군을 거 느리게 해 한(韓)나라의 야왕성(野王城)을 치게 했다.

전국시대 후기의 인물인 백기는 기록에 의하면 165만정도를 참살했다고 나오며(과장되었겠지만) 제일 유명한건 40만 생매장 기록의 90%가 몇만을 수장했다, 20만의 목을 베었다.

장평(長平) 전투에서 조나라의 어린 장수 조괄이 병법만 믿고 항전하자 백기는 조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조군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조괄을 패퇴시켰다.

백기 장군은 북방의 조(趙)나라도 공격하여, 장평(長平)의 싸움에서는 항복한 조나라의 군사 40만을 구덩이에 생매장하고 수도 한단(邯鄲)에 육박하였으나,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의 원군이 투입되어 포위망을 풀고 철수하였다.

백기 (白起)는 진(秦)의 무적장군이자 대학살자 !!! 중국 최초로 통일 제국을 이룩한 진나라 시황제. 하나 그 통일제국의 밑거름은 다름 아닌 여기 무안군 백기(白起)로부터 나왔다.

용병을 잘해서 진의 소왕한테 단단한 신임을 얻고 있었다.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백기도 소왕 48년 조나라 공격 때에는 그 잘나가던 용병술조차 먹혀들지가 않았다.

나중에 진왕이 범수의 간언에 의해 한나라와 조나라로부터 각각 땅을 받고 화친을 뱆은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범수와 대립하다가 함양에 이어 두우로 귀양 보내졌다. 그는 결국 두우륙(杜郵戮)의 고사를 남기고 진왕이 보낸 검을 받아 자살하였다. 전황이 계속 불리해지자 울화가 치민 나머지 엉뚱하게 백기에게 화살을 돌려 자결을 명했다. 백기는 소왕이 보낸 칼을 받아들고 자신의 불운함을 탓했다.

백기 [白氣]는 흰 빛깔의 기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