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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경(裵玄慶, ?~936년)은 고려 고려 개국공신의 한 명이다. 초명은 백옥삼(白玉衫)이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918년 왕건 세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는 궁예가 민심을 잃자 홍유,배현경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즉위,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 정하였다.

경주 배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금산 가리촌장(金山 加利村) 지타(只他)가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총재태사에 오올랐다. 그 후 32년(유리왕 9)에 금산가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성을 배씨로 하사하였다. 후에 한지부가 경주로 이름이 바뀌어서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후손은 기록이 없으며, 배현경(玄慶)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나 배현경(玄慶)은 원래 이름이 성이 없이 백옥(白玉)이었으며 나중에 성을 배씨라고 했다고 한다. 중시조 배현경(玄慶)은 담력이 크고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나 궁예가 고구려에서 태봉이란 나라를 세울 때에 이를 도와 행오에서 출발하여 기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홍유(洪儒) 등과 함께 궁예를 추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하고 개국 일등원훈에 서훈되었으며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919년(고려 태조 2)에 도읍지를 송도로 옮길 때 개주 도찰사가 되어 새 도읍을 건설하는데 공을 세우고 궁예의 잔당을 소탕하는데 공을 세워 대상행이조상서 겸 순군부령도총 병마대장에 이르렀다.

936년(태조 19) 그가 병으로 위독하자 태조가 친히 문병하며 '경의 자손이 있으니 그들을 잊지 않겠노라' 하고 나가자 죽었다. 왕이 부음을 접하자 가마를 멈추고 통곡하였다. 995년(성종 15)에 평산 태백성에 태사사를 세워 매년 봄, 가을에 향사한다.

우리나라 배씨는 모두 지타(祗陀, 태사공)의 후손이었으나 자손이 번성해짐에 따라 본관과 파가 나뉘어져 분성배씨, 성산배씨, 달성배씨, 흥해배씨, 협계배씨, 화순배씨, 함흥배씨 등이 있으며, 대동보를 부정하고 다르게 족보를 만든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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