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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령 [Fang Hsuanling, 房玄齡 578~ 648]은 중국 당(唐)나라 초기의 재상이다.

제주(齊州:지금의 산둥 성[山東省]에 있음) 린쯔[臨淄] 출신이다. 수대(隋代) 말기에 이세민(李世民)이 웨이수이 강[渭水] 북쪽을 점령했을 때부터 그에게 투신하여 그의 건국사업을 도왔다.

방현령(578~ 648)은 능연각 공신이다. 당나라 재상. 당이 일어나자 이세민 측근으로 활약했다. 두여회와 함께 뛰어난 재상의 상징이 되었다. 두여회와 함께 당나라 초기 시스템을 정비했다. 이세민이 당을 세운 후 문치체제(文治體制) 확립을 위해 불러모은 진왕부(秦王府) 18학사는 후에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끌어간 핵심인물이 되었는데, 18학사 가운데 첫번째로 지명된 사람이 방현령이었다.

이미 이때부터 그는 인재를 발굴하는 데 노력해 두여회(杜如晦)와 같은 인물들을 이세민에게 천거했다. 이세민이 즉위한 후 15년간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두여회·위징(魏徵) 등과 함께 '정관의 치'라는 황금시대를 만들어냈다. 자식들이 모두 황실과 맺어졌지만 권세가 커질 것을 염려하여 재상직을 사퇴했다. 71세에 죽을 때까지 계속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저수량(褚遂良)과 함께 〈진서 晋書〉를 편찬했다.

방현령이 계책을 세우고, 두여회가 결단을 내린다. 이로 인한 훌륭한 효과를 방모두단이라 한다. 이세민의 고구려 원정을 충언으로 만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구려 원정 때는 남아서 장안성을 지켰다. 71세. 명대로 오래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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