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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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은 함흥 차사로 알려져 있다.

‘심부름을 보냈는데 감감무소식인 사람’을 일컬어 흔히 함흥 차사라고 한다. 함흥차사는 원래 태종이 ‘함흥에 있는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 보낸 사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훗날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국을 어지럽히자,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나 한양을 떠났다. 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문안을 위해 태조에게 차사를 보냈으나, 그 때마다 돌아오지 않아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태종이 차사를 보낼 때마다 태종에게 몹시 화가 난 이성계가 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고 하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에 대한 분노를 삭히지 못한 태조는 경기도 양주 땅에 있는 회암사와 강원도 오대산, 함경도 안변, 항주 등으로 다섯 번이나 홀연히 한양을 떠났다.

이때마다 태종은 이성계에게 차사를 보내어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돌아올 것을 종용했는데, 그 중에서 희생된 사람은 마지막 차사인 박순과 내관 노희봉 뿐이며, 이들도 이성계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반란군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함흥차사’에 관한 이야기는 후세에 와서 호사가들이 태종과 태조의 갈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부풀린 것이다. 태종(太宗)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이며 효성이 지극하고 학식이 많은 친구 박순(朴淳)에게 함흥으로 가서 아버지 이성계를 모시고 오기를 부탁을 하자, 박순은 쾌히 승낙하고는 어린 새끼가 딸린 말을 준비해 달라고 하여, 새끼 딸린 말을 타고 함흥의 이성계가 있는 집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새끼는 현관 입구에 묶어두고 어미 말을 이용하여 이성계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태종의 뜻을 전하고 한양으로 돌아가기를 아뢸 때 현관 앞에 메어둔 어린 말이 어미 말과 떨어지자 소리를 높여 울어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이성계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반문하자, 박순(朴淳))이 말하기를 전하! 저가 새끼 딸린 어미 말을 타고 함흥(咸興)에 도착하여 전하를 뵙기 전 새끼 말(馬)을 현관 앞에 묶어 두었는데 어미와 잠시 떨어지자 저리 슬피 우는 것입니다. 하물며 미물도 어미와 떨어지니 저리 슬퍼하는데 주상인 태종이 전하와 떨어져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라고 하며 이성계를 감동시켜 한양으로 돌아가기를 아뢰어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로 가정의 날에 떠오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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