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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복이 출생이름이고, 뜻은 활을 잘쏜다는 뜻이다. 장보고는 무령군에 들어가 반란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30세 젊은 나이에 부하 1000명을 거느리는 소장(小將)이란 벼슬에 올랐다. 결국 장보고의 군대가 전쟁에서 이사도를 물리쳤고, 그공을 인정받은 장보고는 병사 1천명을 거느릴 수 있는 무령군 소장이 되었다. 이후 무역 업자로 변신한 장보고는 적산 법화원을 중심으로 신라인들의 구심점이 됐다.

제나라를 중국에서는 흉려 (凶麗), 일본인 학자는 괴뢰집단 이라고 보고있다. 당나라로 가서 무령군 소장이 되었지만 끌려오는 해적을 보고 신라로와서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인동 장씨 족보(仁同張氏族譜)>(1997)에 의하면, 장보고의 아버지는 장백익(張伯翼)이고,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부(蘇興府) 사람이다.

무령군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통일신라시대 이름이다.

인조 2년(1624년) 박상은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여 진무 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무령군(務寧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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