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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메르 [Ricimer] 정식 이름은 플라비우스 리키메르(Flavius Ricimer,?~472. 8. 18]는 456~472년에 서로마 제국에서 황제옹립자로 활동한 장군이다.

리키메르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수에비 족 왕족인 아버지와 서고트 왕 발리아의 딸을 어머니로 둔 사람이었다. 수에비족(게르만 부족의 하나)의 족장과 서(西)고트 공주 사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군대생활 초기에 마요리아누스(훗날 황제가 됨)와 친해졌다. 456년 시칠리아에 침입하려던 반달족을 아그리겐툼(지금의 아그리젠토)에서 격파한 뒤 군지휘관에 임명되었다. 그해 10월 17일 이탈리아의 플라켄티아(지금의 피아첸차)에서 서로마 황제 아비투스를 물리치고 폐위시켰다.이탈리아 수비대의 이민족 출신 사령관 리키메르는 이윽고 자신의 대 반달군 최초 전승기회를 포착하여 아비투스의 퇴위를 강요하였다.

리키메르는 반달족의 왕 가이세익의 함대를 시칠리아앞 바다서 크게 해전을 벌여 격파하고 북아프리카 히포에서 반달족15만 을 섬멸하고 갈리아의 마인츠 방어선을 넘어서 침입한 프랑크족 부기족 7만명 섬멸 수에비족 라인강 방어선서 격파하였다.

457년 2월 28일 군대 최고위직을 맡았고 1개월 뒤 마요리아누스를 서로마 황제로 추대했으며 459년 콘술(집정관)이 되었다. 그러나 마요리아누스는 그의 지배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마요리아누스는 반달족 정벌 원정에서 크게 지고 이탈리아로 돌아오자마자 데르토나(지금의 토르토나)에서 리키메르에게 붙잡혀(461. 8. 2) 5일 뒤 폐위·처형되었다.

그뒤 리키메르는 노쇠한 원로원 의원이던 리비우스 세베루스를 서로마 황제에 임명했다(461. 11. 19). 달마치야(지금의 유고슬라비아에 있음)를 실제적인 독립국으로 다스리던 아이기디우스 장군과 마르켈리누스가 그의 지위를 심각하게 위협했지만 그후에도 몇 년 동안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

465년 8월 15일 세베루스가 죽었고 2년 가량 지난 뒤 동로마 황제 레오 1세가 안테미우스를 서로마 황제로 임명했는데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의 딸과 자신의 약혼이 성립되자 이를 묵인했다. 그러나 안테미우스와 레오가 함께 계획한 아프리카의 반달족 정벌 대규모 원정이 완전히 실패하자 안테미우스는 리키메르의 미움을 샀다. 결국 472년 4월 리키메르는 올리브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로마에 있는 안테미우스를 포위했다. 적을 로마 시 외곽에서 쳐부순 리키메르는 472년 7월 11일 안테미우스를 잡아 참수형에 처했다. 그러나 그 직후 자신도 죽었다. 리키메르는 아리우스파(派) 그리스도교도인데다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황제위에 오를 수는 없어 대신 허수아비 황제들을 내세워 통치하려 했다. 그는 지배기간 내내 이탈리아 반도를 반달족의 침략으로부터, 나머지 속주(屬州)들을 동(東)고트족과 알라니족의 침략으로부터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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