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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同盟)은 페르시아 전쟁 후인 기원전 478년∼기원전 477년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가 제창하여 결성된 그리스 도시 국가(都市國家)들의 해군 동맹이다.

델로스에 본부가 있었기 때문에 델로스 동맹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힘을 합쳐 페르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이 동맹을 조직했다고 한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주로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 도시와 에게해(海)의 섬들로 구성되었다. 명목은 페르시아의 내습에 대비하고 그 지배하에 있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독립시키는 것이었으나, 이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해산하지 않고 아테네의 제국주의적인 지배 도구가 되었다.

본래 제1차 아테네 해상 동맹으로 일컬어졌으나, 그 본부 및 동맹 기금을 수납하는 금고가 델로스섬에 있었기 때문에 후에 델로스 동맹이라 하였다. 모든 동맹국의 대표자들은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었으며 해마다 델로스에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그곳에 있던 아폴론 신전에 동맹의 금고가 보관되어 있었다. 원래는 아이기나·멜로스·테라를 제외한 에게 해의 대부분 섬들, 칼키디키 지방에 있던 대부분의 도시국가, 헬레스폰토스·보스포루스 해협 연안에 있던 도시국가들, 아이올리아 일부, 이오니아의 대부분, 도리스 동부지방 및 비(非)그리스계인 카리아 지방의 일부 도시가 동맹에 가담했던 것 같다.

동맹군 사령관은 아테네인들이 맡았고, 어떤 도시국가가 군함이나 돈을 조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도 아테네가 쥐고 있었으며, 아테네의 헬레노타미아이(회계관) 10명이 돈을 거두고 관리했다. 동맹 전반의 정책은 델로스섬에 있는 재무국에서 개최하는 정기회의에서 결정하였다. 동맹 가입 도시는 원칙적으로 동맹함대를 위한 함선을 내놓을 의무를 지고 있었으나, 회의의 결정에 따라 돈으로 대납할 수도 있었다. 결성 초기에는 정책 결정에 가맹 도시들이 각기 평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원전 454년 동맹 본부와 금고가 아테네로 옮겨지고, 기원전 44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평화 조약(칼리아스 화약)을 체결하자 동맹에 대한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이 확대·강화되었다.

기원전 440년대 후반부터 아테네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동맹 도시들 사이에 높아지고,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함으로써 동맹은 해산되었다. 그 후 다시 스파르타의 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아테네 중심의 제2차 해상 동맹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가맹도시 사이의 단결이 강력하지 못하여 기원전 357년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이 일어나고, 기원전 338년 동맹이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동맹을 맺고 처음 10년 동안은 이따금 페르시아를 곳곳에서 공격했다. 에이온과 트라키아에서 페르시아 수비대를 쫓아냈는데 그 지역에 정착한 아테네 이민(클레루키아)들은 원주민에게 몰살당했지만, 스키로스 섬으로 간 이민들은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스 동맹군은 트라키아 해안의 도시들을 점령했으나 도리스코스 공격에는 실패해 도리스코스는 유럽에 남은 유일한 페르시아 요새가 되었다. BC 467~466년경에 아테네 사령관 키몬은 동맹군의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아나톨리아 남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페르시아 수비대를 쫓아내고 해안 도시들을 동맹에 끌어들였다. 그뒤 그는 팜필리아의 에우리메돈 강 연안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무찌르고 군대 막사를 약탈했으며 키프로스 섬에 있던 증원군도 대파했다. 스파르타는 해외에 지나치게 힘을 쏟기를 꺼려했던 반면 아테네는 아나톨리아에 있는 이오니아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고 페르시아인들에게 보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BC 46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관계를 끊자 동맹 정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전쟁(BC 460~446)을 벌이는 한편, 키프로스·이집트·지중해 동부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동부 지역에서도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 아테네와 그 동맹국들은 스파르타와 싸워 아이기나·보이오티아·그리스 중부지방을 정복했지만, 동맹국 함대가 이집트에서 사실상 전멸해 더이상 영토를 넓히지는 못했다. 해군이 그처럼 참패하자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가 공격해올 것을 우려해 동맹국 금고를 아테네로 옮겼다(BC 454). 델로스 동맹은 그뒤 5년 동안 스파르타(BC 451, 5년 휴전협정), 페르시아(BC 449/448경, 칼리아스 평화조약)와 얽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아테네 제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아테네는 BC 472년경부터 이미 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 그무렵, 에우보이아 지방에 있던 카리스토스를 강제로 동맹에 끌어들였는가 하면 동맹 탈퇴를 원하는 낙소스를 굴복시켜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BC 463년에는 타소스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BC 450년대에는 밀레토스·에리트라이·콜로폰에서 아테네 반대 운동이 일어났으나 아테네가 동맹국의 내정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는 한편 사법권까지 간섭하게 되자 동맹국들은 차츰 독립성을 잃어갔다. 델로스에서 열던 동맹회의는 결국 없어졌고 아테네는 동맹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돈으로 페르시아가 파괴한 아테네 신전들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 참여하자 델로스 동맹은 더욱 무거운 부담을 져야만 했다. 아테네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조공과 군대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에 결국 미틸레네(BC 428~427)와 칼키디키(BC 424)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테네가 BC 413년 시칠리아에서 패배한 뒤에는 동맹국들이 곳곳에서 봉기했으나 대부분의 도시에서 민주주의 파벌들은 여전히 아테네를 지지했다. 스파르타는 아이고스포타미에서 아테네를 무찌르고(BC 405) 이듬해 동맹 해체를 요구하는 평화조약을 아테네에 강요했다.

그러나 BC 404년 이후 스파르타는 해체된 제국을 무능하게 다스렸기 때문에 아테네가 영향력을 되찾게 되었다. BC 377년에 아테네는 코스·미틸레네·메팀나·로도스·비잔티움과 함께 새로운 해군 동맹의 핵심을 결성했는데, 이 동맹의 목적은 평화를 유지하고 스파르타의 침략을 막는 것이었다. 보이오티아가 스파르타 군을 무찌른 BC 371년에는 이 동맹에 가입한 나라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적어도 50개에 이르렀지만 스파르타의 세력이 약해지자 동맹의 목적이 무실해지고 동맹도 차츰 쇠퇴했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BC 338년 카이로네아에서 델로스 동맹을 사실상 분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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