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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켄 천황(仁賢天皇) 또는 닌켄 오키미 (-c.489) 는 일본의 24대 천황이였다.

그는 원래 오요케 황자로 세이네이 천황이 승하할 때, 그의 동생 황자 워케와 함께 발견되었다. 두 소년은 리추 천황의 손자로 세이네이의 상속자로 채용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견 시기는 불분명하다. 더 어린 워케는 시호가 겐조로 그의 형의 합의로 형보다 빨리 왕좌에 올랐다. 워케가 상속자 없이 죽자 오요케가 닌켄으로 그를 계승하였다.

닌켄의 딸 타시라카는 후에 게이타이와 결혼하였는데 케이타이는 계승자 또는 그녀 형제의 찬탈자였고 긴메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권력은 무력(武力)이었다. 성군이라 칭송 받던 선대 닌켄 천황은 문(文)을 숭앙했고 무관을 억압했다. 닌켄은 그의 아들 부레쓰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부레츠는 즉위 원년, 문관들의 목을 쳤고, 그 역시 상속자 없이 붕어하였다.

인현 천황[]

24대 인현천황(仁賢,447~498,재위488~498,백제 24대 동성대왕(모도대왕)) 백제 14대 근구수대왕의 고손자, 488년 고구려와 내통한 동생 현종천황을 죽이고 천황으로 즉위했다.

478년 백제 문주왕이 죽고 480년에 삼근왕도 죽으니 보국장군 여도(輔國將軍 餘都)가 중국에서 모도왕으로서 중국백제왕이 되었다. 여도는 송서(宋書) 백제전(百濟傳)의 대명2년(458년)에 기록된 보국장군 여도다.

중국백제는 우백제로서 우현왕이 다스리고, 왜백제는 좌백제로서 좌현왕이 다스렸다고 보여진다. 458년 기록에 우현왕 여기, 좌현왕 여곤이 보이는데 여곤이 백제 곤지왕자, 청령천황이다. 백제에서 일본에 다시 돌아온 곤지왕은 대화조정에서 청령천황으로서 484년까지 살았다.

458년 이래 본래 규슈 왜왕이 일본의 모든 외교권과 군권을 가지고 현인신(現人神 = 아기스)라 하였고, 대화조정은 제사권, 조세권만 오로지 가진 속국 정부였다.

484년 청령천황이 서거하자 대화조정에서 현종천황이 반란을 일으켜서 스스로 섰다. 현종천황은 고구려계였다. 이중천황(369-432)은 419년 인덕천황이 죽은 후에 즉위한 천황인데, 천황이 되어 고구려와 거래하여서 고구려 여인 구로히메(黑比賣; 400-444)와 정략결혼을 했다. 이 고구려 여인은 이중천황의 즉위 전에 이미 고구려계 중황자와 이시베왕자(市邊忍歯王; 416-458)를 낳았다. 구로히메는 419년에 이중천황과 결혼했는데, 결혼 3년전인 416년에 벌써 이시베왕자를 낳은 것이다.

이시베(市邊)는 당시 백제 수도 황해도 평산에서 예성강(禮成江; 본래는 위례성강) 건너 있는 토산군의 읍리 지명인 시변리(市邊里)와 이름이 같다. 이시베 왕자는 백제 지명을 봉토받았지만 이중천황의 아들이 아니라, 정략결혼으로 숨겨진 고구려 혈통이었다. 이시베왕자는 이히메(夷比賣; 蝦夷族)와 결혼해서 현종(顯宗) 천황을 낳았다.

웅략천황은 친형제들을 죽이고 천황에 올랐는데 고구려계 이시베왕자까지 암살한 것은 같은 고구려계로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이때 이시베 왕자의 아들인 현종천황과 인현천황은 도주하였다.

한편 반풍황녀(飯豊皇女422~470)는 이중천황과 구로히메 사이에 태어났고, 이시베왕자와는 이부동모 남매고 현종천황의 고모다. 청령천황은 반풍황녀를 대화 조정의 제사를 지내는 재왕(齋王)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청령천황은 반풍황녀에게 아름다운 각자궁(角刺宮)을 지어주기도 했다. 반풍황녀는 웅략천황 때에 도망갔던 조카 형제 현종천황(451~488)과 인현천황(447~498) 형제를 거두어 길렀다. 이 두 형제가 고구려 씨앗으로서 백제의 화근이 될 줄은 청령천황도 몰랐을 것이다.

470년에 반풍황녀도 죽고 대화조정은 무녕왕이 오가면서 청춘으로서 연애를 하였다. 무녕대왕(武寧大王,462~523)은 고구려계 윤공천황의 증손녀인 난파소야왕(難波小野王,461~498)과 사랑에 빠졌다.

[고사기/웅략천황기]에 나오는 천어가(天語歌) 등의 시가(詩歌) 6편이 무녕왕의 이야기이다. 시 한 편에서는 오도히메(袁杵比賣=小姬=윤공천황의 증손녀)와 술래잡기를 하였다.

또 다른 시에서는 미에현(三重縣 웅략천황이 은거한 곳)의 공녀가 무녕왕을 축수하는 시가였고, 또 한 편은 황후(갈성 한원)가 그녀에게 무녕대왕을 위해서 술을 올리라는 것이고, 또 무녕왕이 그녀에게 술병을 꼭 잡으라는 시가도 있다. 마지막 한 편은 그녀가 무녕왕을 위해 헌신한다는 축사였다.

[상륙국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는 왜무천황(倭武天皇) 전설이 있다. 상륙국은 동경 북쪽 지방이다.

“왜무천황과 귤(=구려, 다치바나)황후가 사냥과 수렵의 경쟁을 해서 많은 수확을 얻어 배부르게 먹고 그 마을을 포전촌(飽田村)이라고 하였다.”

ここに倭武天皇、野に出でまして、橘の皇后に命じて海で漁をさせ、獲物を競い合って山と海のものに分かれました。このとき野の狩りは終日獲物を駆り出して弓を射ましたが、一匹の獣もとれず、海の漁の方はわずかの間に百種類の収獲がありました。狩りと漁を終え、食事を差し上げたときに陪臣におっしゃられました。「今日の遊びは私と后とそれぞれ野と海に行って獲物を競った。野のものは獲られなかったが海の味わいは飽きるほど食べた」

後になって飽田の村と名づけました。

493년 인현천황기 6년에 일응길사(日鷹吉士사)를 고구려 사자로 보낼 때 기이한 노래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노래는 난파-즉어녀(難波鯽魚女)의 딸 곡녀(曲女)와 곡녀의 딸 포전녀(飽田女)의 전설이다. 산저(山杵)가 즉어녀와 추촌(麁村)을 낳고 뒤에 한백수랑口(韓白水郞口])과 즉어녀가 결혼하여 곡녀(哭女)를 낳았고, 산저는 다시 곡녀와 결혼하여 포전녀를 낳았고, 추촌이 다시 포전녀와 살았다.

산저(山杵)는 야마토로 읽어서 왜왕 무녕왕이고, 즉어녀는 난파소야왕이고 한백수랑한은 현종천황이고 추촌은 고구려로 가는 사자였던 일응길사(日鷹吉士)이고, 곡녀는 귤황후에 해당한다. 한백수랑과 곡녀는 일찍 죽었다고 한다. 곡녀로 보면 야마토 왜무왕이 어머니의 남편이자 내 남편이다. 단, 친부녀간은 아니다. 곡녀가 일찍 죽고 곡녀의 슬픔을 그 딸인 포전녀가 이때 노래한 것이다.

개로왕이 죽자 무녕왕은 왜무왕이 되어서 대화에서 구주 경도 광고궁에 돌아가서 부왕 복수의 칼을 갈았는데 청령천황이 대화조정에서 서거하자, 현종이 대화에서 쿠데타를 하였다.

무녕왕이 아끼던 난파소야왕(難波小野王)을 지키면서 대화조정의 집무를 대리하여 맡아보던 대신 평군지비(平郡志毗)를 현종이 습격하여 죽이고, 난파소야왕을 차지하여 황후로 세웠다. 현종천황은 백제와 맞서기 위해서 고구려계 왕비를 세우고 고구려 부활을 도모한 것이다.

현종천황은 대마도 임나와 한반도 가야와 손을 잡았다. 가야의 신들에게 뇌물을 받치고 병사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대마도 임나의 기대반숙녜(紀大磐宿禰)는 451년 개로대왕의 큐슈 정벌 때에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엇지만, 대마도 임나에서 제멋대로 하였고, 그가 대마도 임나에서 스스로 신성(神聖)이라 칭하고 독립 왕을 꿈꾸면서 고구려와 통했다.

또 임나 대마도의 좌로(佐魯) 등을 이용해서 백제 장수 적막이해(適莫爾解)를 대마도 고구려 땅에 유인하여 이림(爾林)에서 죽였다. 이림은 대마도 북섬의 서북부 인전만(仁田灣) 인전천(仁田川) 부근으로 추정된다.

좌로(佐魯)는 대마도 북도의 좌호천(佐護川)에 있었을 것으로 고려된다. 기대반숙녜(紀大磐宿禰)는 대마도 남도에 대산성(帶山城)을 쌓고 곡물 수송의 길을 막았다.

왜백제 무녕왕은 고이해(古爾解)와 막고해(莫古解)를 보내어 대마도를 토벌하였다. 기대반숙녜는 임나에서 대화조정으로 도주하였다. 백제군은 대마도 임나의 좌로(佐魯) 등 300명을 죽여서 토평을 끝냈다.

487년 대마도 반란이 토평되자 왜무왕 무녕왕은 대화로 건너가서 현종천황을 축출하였다. 현종천황은 488년에 죽었다. 1년간 미에현(三重縣) 미하읍(水派邑)에 숨었을 것이다.

현종천황은 자손의 기록이 없고 고분도 초라한데 자손이 다 죽었거나 도망간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서 현종천황의 황후였던 난파소야왕(461-498)은 이때 488년에 스스로 자살했다고 기록되었는데, 실제 능비에는 10년 이상 더 살았다.

현종천황의 형인 인현천황(447~498)은 488년부터 대화조정의 제사를 모시도록 허락되었다. 실제로 인현천황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490년 백제가 중국에서 북위와 대전쟁을 치를 만큼 많은 병사가 중국에 갔어야 하니 길을 트기 위해서 대마도 확보 전쟁은 긴요했고, 대화조정의 민심 수습도 중요하였다. 당시 일본의 장수들도 백제군으로서 대륙 해안 방어 전쟁에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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