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라 시대 세금과 부역이 감당할 수 없이 증가하고 천재까지 겹쳐 백성들은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녹림군(綠林軍)과 적미군(赤眉軍) 등 농민봉기군이 각처에서 연달아 일어났다.

농민군이 처음에 지금의 호북성 대홍산인 녹림산에 주둔하였기 때문에 '녹림군'으로 일컬었다. 왕망의 신(新)나라 말기에 농민대봉기가 폭발하자 광무제는 이 기회를 틈타 형 유인(劉縯)과 함께 거병하여 녹림군(綠林軍)에 가담하였다. 한 황실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유현(劉玄)과 유수(劉秀)가 녹림산의 도둑떼 왕광, 왕봉 등과 손을 잡고 결성한 녹림군(綠林軍)인데 그 수가 5만 정도 되었다. 이들 중 유수는 그 야망은 컸으나 매우 야비한 인물이었다.

녹림군은 왕망王莽정권을 전복시키고 다시 유씨의 한漢나라를 이으려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유씨 성을 가진 황제를 세워야 했다. 민초들이 스스로 일어나 "녹림군"을 조직하였고, 신제국 황제 왕망은 궁궐에 침입한 녹림군에의해 참살당하였다.

정권을 잡은 녹림군의 경시제가 적미군 장군에게 영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적미군이 녹림군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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