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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양[金致陽,?~1009(현종 즉위)]은 고려 전기의 권신(權臣)으로 본관은 동주(洞州),서흥(瑞興)이다. 경종의 제3비(第三妃)이자 목종의 어머니인 헌애 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의 외척이다. 황보수, 천추 태후의 일생의 연인이며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의 부흥을 꿈꾸는 남자였다.

경종이 죽은 뒤 승려 행색으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했지만, 스캔들이 있어서 성종에 의해 멀리 장배(杖配)되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외가의 친척인 김치양(金致陽)과 염문을 뿌렸다. 고려의 도읍 개경에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대한 추문이 파다하였다.

997년(성종 16) 성종이 죽고 어린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이제 자신의 세상을 만난 천추 태후는 즉시 김치양을 대궐로 불러들여 자신의 곁에 두었다. 천추 태후는 순식간에 정권을 거머쥐고, 곧바로 귀양 가 있는 김치양을 불러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든 권세는 자연 김치양의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목종은 나라일에 관심이 없었던 군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성정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섭정을 통한 불만과 어머니의 정부 김치양을 궁으로 끌어들여 부부 행세를 하며 아이까지 낳고 김치양에게 관리 임명권이 넣어가는 등 왕권을 빼앗기고 허수아비가 된 것 같은 절망감에 나랏일을 외면하고 분탕질에 빠지게 됐다.

특히 거란의 2차 침입의 계기가 되는 강조와 김치양의 갈등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 김치양이 드디어 흑심을 드러내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강조에 의해 반란이 진압되었다. 천추 태후가 김치양을 처단하며 "나는 이제 끝났다, 이대로 내버려 달라"고 말한다.

강조(康兆) 에게 대량원군의 호위를 명하여1009년 강조(康兆)의 정변(政變)으로 순(詢: 현종 )이 즉위하자 김치양은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으며, 그의 일당과 태후의 친척 이주정(李周禎) 등은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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