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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金陽)

김명(金明)이 희강왕(悌隆)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니 이가 민애왕이다. 이런 정변이 일어나자 이 해 2월 김양은 청해진으로 들어가 균정의 아들 김우징을 만나 거사를 계획하였다. 훗날 김양은 청해진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다시 서라벌로 진격하여 민애왕을 죽이고 쿠테타에 성공하였다.

장보고는 중앙정부의 권력전에도 관여하여 왕위계승전에 패한 김우징(金祐徵)과 김양(金陽)을 받아들인 뒤 지원군을 보내어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라하여 신무왕은 장보고를 감의군사(感義軍使)로 봉했으며 신무왕의 아들로서 뒤를 이어 즉위한 문성왕에 의해 진해장군(鎭海將軍)에 봉해지는 등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즉, 당시 흥덕왕이 후사(後嗣) 없이 죽자, 희강왕은 삼촌인 균정(均貞)과 왕위 다툼을 하다가 시중(侍中) 김명(金明:민애왕), 아찬(阿粥) 이홍(利弘) 등의 도움으로 삼촌을 받든 아찬 우징(祐徵)과 조카인 예징, 김양 등을 궁궐에서 다투었는데,김양은 화살에 맞아 우징(祐徵)과 함께 도망하고, 균정은 살해되었다. 우징은 장보고에 몸을 의탁하였다. 그리하여 김명을 상대등(上大等),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여 정권을 맡겼으나, 838년 김명과 이홍이 반란을 일으켜 측근자를 살해하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리하여 민애왕이 즉위하자 김양(金陽)은 군사를 모집하여 청해진으로 와서 먼저 와 있던 김우징을 만나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보고는 김양, 염장(閻長), 장변(張弁), 정년(鄭年), 낙금(駱金), 장건영(張建榮), 이순행(李順行)으로 하여금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김양과 함께 경주로 진격하게 했다. 이들은 중앙군을 물리치고 경주에 침입하여 민애왕을 살해하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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