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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중국어: 奇皇后, 몽골명: 完者忽都, 완췌후두,Öljei Khutugh)는 고려 출신의 여자로, 중국 원나라 순제황후였다. 그녀의 부친은 기자오(奇子敖)로 행주에서 태어났으며, 오빠로는 기철(奇轍)이 있었다. 그녀는 원나라의 황제인 토곤 테무르의 배우자이며 아유르시리다르의 어머니였다. 몽골명은 올제이 후투그였다.

원 문종의 아들 토곤 테무르는 놀다가 외모가 뛰어났던 기락을 발견하고, 그를 자신의 처소로 데려간다. 얼마 후 문종이 죽고 토곤 테무르는 원순제로 황제에 등극한다. 기락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매우 똑똑하고 영민해 순제가 상당히 총애하였다고 한다. 순제의 제1황후 다나슈리 하툰은 그를 매우 질투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 끊임없이 기락을 괴롭혔다. 심지어는 기락에게 채찍질을 해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335년 다나슈리 하툰의 형제들이 모반을 일으키고, 탕기시의 반란으로 1340년 폐위된 다나슈리는 독살당한다. 황후가 죽자 순제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기락을 새 황후로 책봉하려 하였으나, 실권자 바얀이 그것을 반대하였다. 조정의 반대에 부딪혀 대신 바얀 후투그를 황후에 봉한다.

그러나 순제는 오직 기락만을 총애하고, 황후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락은 아들 아유르시리다르를 낳아 황제의 더 큰 사랑을 얻고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한다. 바얀이 숙청된 후 그녀는 1340년 제2 황후(제1 황후는 곤기라트 출신의 바얀 후투그였다)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 아유르시리다르는 1353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그의 고려출신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이용하여 그녀는 황제가 황위를 아유르시리다르에게 건내게 압박하였다.

1365년 제1 황후 바얀 후투그가 향년 42세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후, 기황후는 정황후가 되어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 기황후는 황후가 된 후에도 박불화를 잊지 않고 자신이 기거하는 흥성궁에 가까이 두었으며, 그를 영록대부로 승급시키고 자정원사의 직책까지 맡게 하였다. 자정원은 원나라 때 전문적으로 전국의 재정을 관리하던 부문으로, 쉽게 재물을 축적할 수 있었던 요직이었다. 기황후로부터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은 박불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많은 재물을 축적했으며, 그 중 상당 부분은 기황후의 몫으로 돌아갔다.

몽골은 고려를 병합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오빠 바얀 부하(기철)는 왕의 지위를 압박하였다. 이에 고려 공민왕은 1356년 기씨족을 멸하였다. 1364년 그녀는 타시 테무르를 고려의 왕으로 세우고 고려로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압록강을 건너던 중 고려 군대에 격파되었다. 그 때에 황태자의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에 내전이 있었고, 반대하던 지도자 볼루드 테무르는 결국 1364년 수도를 점령하였다.

아유르시리다르는 지지자인 코케테무르(王保保)로 달아났지만 기황후는 볼루드 테무르의 포로가 되었다. 볼루드 테무르는 다음 해 코케테무르에의해 전복되었다. 다시 그녀는 코케테무르의 지지로 그녀의 아들을 칸으로 즉위시키려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바얀 후투그가 죽은 후에 기황후는 제1황후가 되었다.

1368년 몽골 지배의 붕괴는 그녀를 응창(應昌)으로 달아나게 하였다. 1370년 토곤 테무르 칸이 죽고 아유르시리다르가 그곳에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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