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 [Guinea]는 1663년부터 1813년까지에 걸쳐 쓰이던 영국의 금화, 아프리카의 서부 끝 대서양 기슭에 있는 공화국이다. 기니라는 이름은 아귀나우 또는 그나와('흑인의 땅'을 뜻하는 베르베르어)에서 유래했으며, 포르투갈인이 처음으로 사용한 뒤 14세기부터는 유럽 지도에 Guinuia, Ginya, Gheneoa, Ghinea 등으로 씌어졌다.

북동쪽으로 안노본(옛 이름은 파갈루) 섬에서 상투메를 지나 카메룬 산까지 화산봉우리가 줄지어 뻗어 있으며 서쪽을 상부(上部)기니, 남쪽을 하부(下部)기니라고 한다. 기니 만은 대서양에 속하며 기니 해안지역과 면해 있다. 기니 해안의 여러 구획은 각각 주산물로 명명되어 있다. 곡물해안(Grain Coast:지금의 라이베리아 해안지역으로 메수라도 곶에서 팔마스 곶까지를 말함)은 '낙원의 곡물'이라 불렸던 크실로피아(Xylopia aethiopica)의 원산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밖에 상아해안(Ivory Coast:팔마스 곶을 지나 지금의 코트디부아르에 속하는 지역). 황금해안(Gold Coast:지금의 가나 해안지역으로 스리포인츠 곶 동쪽)·노예해안(Slave Coast:지금의 토고·베냉 나이지리아의 해안지역으로 볼타 강과 나이저 강 삼각주 사이를 말함)이 있다.

1434년 포르투갈인 선원 질 에아네스(질리아네스)가 보자도르 곶(북위 26˚)을 일주했으며, 몇 년 뒤 노예와 금을 실은 첫번째 화물선이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교황인(敎皇印)으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고, 1469년 페르낭 고메스는 해마다 480㎞의 새로운 해안을 개척한다는 조건으로 무역독점권을 얻어냈다. 디오구 캉은 1471년 적도에 도착했고, 1482년 콩고 강을 개척했다. 1530년 이후 영국·프랑스·네덜란드·덴마크·브란덴부르크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 지역에 교역소나 요새를 만들었다.

유럽인은 기니 지역의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고온다습한 건강에 좋지 않은 날씨와 빽빽한 열대다우림(多雨林), 그리고 해안지역에는 거센 파도가 일고 항구가 드물어 항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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