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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월군(弓月君) 일본서기에는 4세기말에 백제의 궁월군이란 인물이 120현민이나 되는 대규모 백성을 이끌고 집단망명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찬성씨록에는 묘하게도 진나라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의 중권[응신천황조(應神天皇朝)]편을 살펴보면 베를 짜는 기술자인 궁월군(弓月君)의 증손인 수수거리(백제인)란 기술자가 일본에 가서 술을 빚어 응신천황(應神天皇)에게 바쳤더니 왕이 술을 마셨다.

일본의 문서에서 자주 나오는 귀화한 한족은 한나라(漢)의 궁월군(유미즈키노키미:弓月君)의 후예라고 칭하는 하타(秦)씨와 백제에서 섬유기술을 가지고 가서 성장한 아야(漢)씨 그외에 동한직(東漢直, 劉氏), 서문수(西文首, 王氏)등이 있다.

이 해에 궁월군[弓月君, 유쓰기노기미]이 백제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상주하기를, '나는 우리 나라의 인부 120縣을 이끌고 귀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다 加羅國에 머물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 정사에 따르면 백제에서 건너온 궁월군(弓月君)의 후손 하타씨는 백성 18,000여 명을 모은 다음 누에를 쳐서 비단을 만들었는데 비단의 양이 산더미를 이루었으며 이를 천황에게 바쳐 <우즈마사(禹豆麻佐)>라는 성씨를 내려받았다.

영락 9년, 10년조의 신라 국경에 왜인이 가득찼다에서 왜는 침략한 왜가 아닌 일본서기 응신 14년 궁월군 일행이었다. 즉 비류 백제가 멸망하고 그 유이민의 대규모 망명이었던 것을 비문에서 왜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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