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대왕 (廣開土王) 또는 영락대왕, 호태왕은 고구려 제19대 왕(391~412 재위)이였다.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고국양왕의 차남이였다. 광개토 대왕은 374년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제 근초고왕에게 목숨을 잃은 고국원왕의 손자이다. 12세 때인 386년 태자로 책봉되고, 아버지가 일찍 죽자 17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대외적인 정복 사업을 정력적으로 수행하여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장시켰다. 대대적인 정복사업을 전개하여 북으로는 만주의 대부분과 남으로는 백제의 한강 이북까지 점령하였다. 그래서 고구려가 제일 발전한 때가 광개토 대왕이 왕이었을 때였다.

광개토 대왕 은 처음으로 영락(한국에 알려진 최초의 연호이다)이라는 연호를 썼고, 즉위 초부터 탈환전을 개시하여 백제의 북쪽을 진격함으로 인해 석현등 10성을 함락하였다. 396년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다.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신라에 침입한 왜군을 군사를 보내어 물리쳤다.

해방 이듬해(1946년), 경주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고분 발굴이 있었다. 호우총이 그것이다. 발굴현장에서는 왕릉급 고분임을 알 수 있는 금동관 파편과 함께 청동항아리 호우가 발굴되었는데 호우 바닥에는 국강상 광개토 호태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구려비는 남한에는 중원 고구려비가 유일하다.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 대왕의 비는 높이 6.5m에 달해 웅장하고 네 면에 새긴 글자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커뮤니티의 콘텐츠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CC-BY-SA 라이선스하에 배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