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륵 [觀勒]은 7세기초에 일본에서 활동한 백제의 승려이다. 삼론학(三論學)의 대가(大家)로, 602년(무왕 3) 일본에 건너가 겐코사(元興寺)에 머물면서 역본(曆本)·천문(天文)·지리(地理)·둔갑술(遁甲術) 등에 관한 문헌을 전하고, 제자를 길러 불교 전파에 크게 공헌하였다.

삼론(三論:中論·百論·十二門論을 말함)에 정통하고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602년(무왕 3) 10월에 일본에 가서 역본(曆本)·천문지리서·둔갑방술서(遁甲方術書) 등을 전했다. 당시 일본의 세이코 천황[推古天皇]은 서생(書生) 3~4인을 골라 관륵에게 배우게 했다.

625년(무왕 26) 일본에서 어떤 승려가 자기의 조부(祖父)를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로 연유해 불교에 대한 일본왕의 박해가 심해지자 이를 무마하고 승정(僧正)이 되어, 전국의 승려를 단속하면서 질서 확립에 노력하였다. 이것이 일본 승강(僧綱)의 효시가 되었다.

사건에 대해 세이코 천황이 여러 절의 승려들을 문책하여 사실이면 중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때 관륵이 표(表)를 올려 "불법이 서국(인도)에서 한(漢)에 들어온 지 300년 만에 백제에 들어와 겨우 100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임금이 불상 및 경전을 일본에 전한 지 100년이 되지 않았다. 지금의 승려들은 아직 법률을 배우지 못하여 나쁜 짓을 쉽게 범했으나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한 자를 제외한 나머지 승려들을 벌주지 않으면 큰 공덕이 될 것"이라는 요지로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관륵을 승정(僧正)으로, 안부(鞍部) 덕적(德積)을 승도(僧都)로, 아담련(阿曇連)을 법두(法頭)로 임명하여 승려를 감독하도록 했다. 이를 계기로 왜국에서는 전국의 절 및 승려를 조사하여 절을 세운 이유, 출가한 연유, 득도한 연월일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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