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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광 [ (병)Huo Guang (웨)Huo Kuang. ~기원전 68]은 중국 전한(前漢) 때의 대신이다. 자는 자맹(子孟). 하동(河東) 평양(平壤:지금의 산시[山西] 린펀[臨汾] 서남쪽) 사람이다. 무제(武帝) 때 봉거도위(奉車都尉)와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냈다.

무제는 만년에 들어 간신(奸臣)들의 무고로 황태자인 유거(劉據)를 죽인 후 후사 문제로 고민하다 장성한 아들들을 제치고 엉뚱하게 63세 때 낳은 막내아들 유불릉(劉弗陵)을 후계로 세웠으니 그가 바로 소제(昭帝 B.C. 87-74)였다. 무제가 사망할 당시 소제의 나이 겨우 8살이라게 큰 문제였다. 더구나 외척의 입김을 배제하기 위해 소제의 생모마저 자살케 한 뒤라 소제 혼자서는 제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제는 신하들 중 충직하고 믿음이 가는 곽광(霍光)에게 어린 황제의 후사를 돌보도록 했다.

한무제가 죽고 전한 소제(昭帝)가 8세에 즉위하자, 상관걸(上官桀)·상홍양(桑弘羊)과 함께 무제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소제를 보필하며 모든 정치를 도맡았다.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이 되어 상서(尙書)의 일을 맡아 조정의 일을 총지휘했고, 박륙후(博陸侯)에 봉해졌다. 본래 강직하고 충성스러웠던 곽광은 점차 어린 황제의 신뢰를 바탕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기원전 83년에 소제가 상관안(上官安)의 딸을 황후로 맞아들이자, 황후의 외할아버지 신분으로 조정 일을 전담했다. 여러 차례 재정지출을 삭감했으며 조세와 농지세를 감면했고, 공전(公田)을 하사했으며, 종자와 식량을 대출해 주었다.

기원전 81년에는 현명한 학자들을 불러 모아 소금과 철의 전매정책을 논의했으며, 주류(酒類) 전매를 폐지하는 조서를 내려 민생의 안정을 꾀했고 사회·경제를 발전시켰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이란 ‘굴뚝을 구부려 놓고 굴뚝 가까이에 쌓아 놓은 섶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는 뜻인데, 화근을 미리 없애 재앙을 예방한다는 의미다. 전한시대 정치세력가 곽광은 황권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 연방제국이 무제시절부터 유교를 국교로 삼았는지라 신하가 군주를 공격하면 그 자체가 악으로 공인되고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면 그 자체가 악으로 공인되는 구조였다.

소제가 죽은 뒤에는 무제의 손자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맞아들여 즉위시켰으나, 27일만에 폐하고, 다시 선제(宣帝)를 세웠다. 곽광은 20여 년 동안 집정했다.

한선제(漢宣帝) 유순(劉詢) 때 곽광 일파가 모반에 실패하여 숙청당하였다. 그러다 소제가 젊은 나이에 후사를 남기지 않고 요절하자 곽광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무제의 원래 황태자 유거의 손자인 유병이(劉病已)를 제위에 오르게 했으니 그가 바로 선제(宣帝 기원전 74-49)이다. 선제는 감옥에서 여자 죄수의 젖을 먹고 살아남았고 민간에서 성장하여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제는 애초 권력 기반이 전혀 없었고, 곽광의 위세가 황제를 능가할 정도라 곽광의 도움 없이는 제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선제는 집권 초기 모든 일을 곽광의 자문을 받아 처리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임을 보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이렇게 큰 부귀와 영화를 누림에도 곽광의 후처인 곽현(霍顯 종의 딸로 태어났으나 빼어난 인물로 곽광의 총애를 받다가 나중에 부인이 됨)은 자신의 막내딸을 황후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남편 몰래 자신과 친한 어의(御醫)를 매수해 아들을 낳고 산후 조리 중이던 황후 허(許)씨를 독살했다.

허 황후가 사망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곽현의 소원대로 자신의 막내딸이 입궁해 귀비(貴妃)가 되었고 이듬해 새로운 황후로 채택되었다. 딸이 황후가 된 후 곽광이 사망하자 곽씨 일가는 더욱 오만불손해져 심지어 노복들까지 제멋대로 행패를 부릴 정도였다. 이렇게 되자 곽씨 일가에 대한 신망이 점점 낮아지면서 조정 대신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불만을 품었다.

뒤늦게 허 황후가 독살된 사실을 알게 된 선제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곽씨 가문을 무력화시켜나가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곽씨들이 謀叛모반을 꾀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결국 곽 황후는 폐출되고 나머지 일가인 구족이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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