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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車城,薊城)은 연나라의 수도였다.

주나라를 세운 삼공(三公-太公, 周公, 召公)의 한 명인 소공이 봉해진 연나라는 후에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가 되었다. 수도는 계성이였다. 소공은 주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성왕이 나이가 어리자 주공과 함께 주나라동주서주로 나누어 맡아하였다.

전국시대 말기, 연나라는 형가를 보내지만 실패하자 진왕은 이를 핑계로 연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듬해 시황제 21년(기원전 226년) 34세 10월 왕전이 연나라 수도 삽주 계성(車城)을 함락시켜 연나라 태자의 머리를 가지고 왔으며, 연나라 왕희(喜)는 요동으로 달았다. 결국 연나라는 수도 계성을 함락당하고 산둥으로 밀렸다가 진의 계속된 추격으로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 전국시대 연나라 후기 수도가 탁군 계성이었는데 발갈지간에 있다

오호십육국 시대에 선비족(모용, 단, 우문) 중 모용외는 319년 유주를 거의 장악하였다. 모용외전연의 수도가 계성이라한다. 발해 태자 대조영이 있었던 계성이 예전 연나라 수도로 계현이고 어양이였다.

위치편집

  • 북경시 서남 북경(北京)은 3,000년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연(延)의 수도 계성으로 부터 시작하여 요(堯)나라때 남경(南京)ㆍ금(金)나라때 중도(中都)라 부른 도읍지이다. 이 계성이 북경이 되는 지역으로 지역명이 천이(遷移)되었다고 보인다. 양 제조서의 발갈지간은 북경 남쪽 탁군 정도에 해당한다.
  • 고려의 수도가 발음상 계성(薊城)과 유사하다. 고려의 수도는 개성(開城)으로, 광개토 대왕의 개토(開土)와 의미가 통한다.
  • 전연의 수도인 계성을 감숙의 동쪽인 섬서 서북쪽으로 본다. 계성은 연나라의 수도로 하남성에 있었다.

같이보기편집

전 임
호경
연나라의 수도
후 임
함양, 전연 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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